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와 근무 일수 조정 등이 늘자 국내 최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주 4일제를 주제로 한 이 같은 내용의 설문도 급증하고 있다. ‘주 4일 10시간 근무와 주 5일 8시간 근무’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주 4일 근무를 한다면 연봉의 얼마까지 포기 가능한지 등을 묻는 설문 조사 등이 대표적이다.
직장인 커뮤니티의 이 같은 논의들이 단적으로 시사하듯 코로나19 사태가 주 4일 근무제를 갑자기 쏴올렸지만 실질적 도입을 놓고는 난제들이 많아 첩첩산중인 형국이다.
가장 큰 쟁점은 임금 삭감이다. 취업 포털 ‘커리어’가 진행한 주 4일제 관련 설문 조사에 따르면 근무 일수를 줄일 때 가장 우려되는 사항에 대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주당 근무 일수가 줄어든 만큼 내 급여도 감소할 것 같다(71.2%)’고 답했다.
20년 전 주 5일제 도입 논의가 촉발할 때 역시 최대 쟁점은 바로 임금 삭감이었다. 임금 감소분을 수용할 수 없다는 노동계와 주 5일제를 시행한다면 임금 삭감은 불가피하다는 경영계의 입장이 격렬히 맞섰다. 당시 경영계는 주 5일제가 도입될 경우 시간당 임금 단가가 상승하는 것은 물론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는 시간이 증가하게 돼 과도한 인건비 상승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특히 노동 의존도가 높은 업종이나 투자 여력이 미약한 중소기업은 경영 자체가 곤란해지는 위기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 어쩔 수 없이 주 4일 근무를 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임금만 줄었지 일하는 양은 비슷하다”고 토로한다. 현재 주 4일제를 시범 시행하고 있는 대부분 기업은 코로나19에 따라 일시적으로 근로자의 연차를 소진하거나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주 4일제를 도입할 경우 상당수 기업은 인건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임금을 낮추면 여력이 생길지 몰라도 주 4일 근무는 경영계에 신규 채용 자체를 부담스럽게 하고 비정규직이 오히려 늘 수도 있다”고 짚었다.
노노 갈등이나 논쟁 역시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경제 형편이나 처지가 개인은 물론 연령대별로 각각 달라 급여 삭감을 감수하고라도 주 4일제를 일률적으로 택할지는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주 4일제로 인해 오히려 휴식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주 5일제를 시행할 당시에도 서비스업 노조 등을 중심으로 무늬만 주 5일제일 뿐 근무 강도는 한층 세지고 주말에도 업무 지시를 받는다는 불만이 들끓기도 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주 4일제 도입 논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임금 삭감과 신규 채용 감소, 휴식의 질 문제 등을 둘러싼 적지 않은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주 4일제 도입을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고 나선 독일의 경우만 해도 초반부터 임금 삭감을 놓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독일 슈피겔지에 따르면 후베르투스 하일 연방 노동사회부 장관은 “주 4일 근무제는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면서 “사회적 파트너가 동의하면 임금을 (정부가) 부분 보상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기 사민당 총리 후보인 올라프 숄츠 연방 재무장관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보조금 기한을 24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힘을 보탰다.
하지만 독일 재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정부의 지원책은 일시적인 것으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주 4일 근무제 도입을 진지하게 추진하려면 임금 삭감을 전제로 노사정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주 4일 근무는 답보 상태다.
노동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국내에서 주 4일제를 둘러싼 일종의 시범 기간이 운영되는 것은 향후 다양한 근무 시스템에 대비한 경험과 자료 축적의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 4일제가 노동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산성 증대를 위해서는 어떤 보완 조치가 필요할지, 임금을 줄인다면 어느 정도로 해야 합의가 가능할지 등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시험 준비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금을 현행 유지하며 주 4일제를 할 경우 임금이 인상되는 격이어서 근로 시간을 줄이는 만큼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노사 합의를 통해 임금 삭감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해외에서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도 주 4일제를 일시적으로 도입해 성공한 사례가 존재하기는 한다. 주 4일제를 통해 업무 효율성을 올린 덕분에 생산성이 증가해 기업이 굳이 인건비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일본 지사는 지난 2019년 여름 한 달 동안 주 4일 근무제를 시행했는데 이 기간 직원들의 1인당 매출 기준 생산성이 전년 대비 40% 증가하고 전기나 종이 인쇄 비용 등은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다만 MS 일본 지사의 실험이 짧은 기간에 국한됐던데다 정보기술(IT) 업종의 특수성도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어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제조업의 경우 설비를 가능한 한 많이 돌리는 것이 생산성을 올리는 길이어서 노동 효율성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반면에 쉬는 날이 늘어나면 매출 확대 등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는 일부 서비스업 등이 있기 때문에 업종별 특성들을 충분히 감안해야 주 4일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일부 업종에서는 근로자보다 사용자 측이 주 4일 근무제를 활용해 구조조정 등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은행의 경우 과거 토요일 영업이 비용만 클 뿐 생산성이 낮게 나타나 주 5일제를 이행하는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며 “최근 금융권의 비대면 서비스가 늘면서 점포를 줄이는 곳이 많아 주 4일제 논의에서 사용자가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업종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