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트럼프의 자해성 캠페인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트럼프, 파시즘 꽂힌 독재자처럼

인종주의적인 음모론 쏟아내며

시위사태 책임은 바이든에 돌려

"경찰 폭력 스트레스 탓" 주장도

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캐슬린 파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표를 갉아먹는 자해성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 덕분에 조 바이든은 지난 몇 달간 공개적인 행보를 자제해가며 유익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유권자들 가운데 바이든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랜 공직생활로 워낙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굳이 얼굴을 알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트럼프도 인지도 면에서 더 이상의 추가 노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오는 29일과 다음달 15·22일로 예정된 세 차례의 맞토론은 유권자들에게 양당 대선 후보의 자질과 결점을 보다 확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트럼프와 바이든은 최근 TV 인터뷰와 연설에서 토론에 임하는 각자의 심리상태를 내비쳤다. 바이든은 짤막한 대중연설을 통해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행사와 이로 인해 야기된 사유재산 파괴 등 시의적절한 발언을 내놓았다. 반면 트럼프는 폭스뉴스 진행자인 로라 잉그러햄과 가진 TV 인터뷰에서 틀린 말만 골라서 했다. 바이든의 발언이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 데 비해 트럼프의 혀는 양철처럼 가벼웠다.

대통령은 지난 몇 년간 백악관 보좌관처럼 행동했던 잉그러햄이 쉬운 질문을 던질 것으로 기대했다. 잉그러햄은 자신의 멘토이자 대부인 팻 시펄로니를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밀어 올리는 거간꾼 역할을 수행할 만큼 트럼프와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카메라가 돌아가자 잉그러햄은 더 이상 트럼프의 ‘절친’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어두운 그림자’로 살면서 바이든을 조종하는 나쁜 사람들(bad people)에 관해 얘기하자 잉그러햄은 “그게 무슨 뜻이죠. 마치 음모론처럼 들리는군요. 어두운 그림자는 뭔가요”라고 되물었다.

예상하지 못한 반문에 트럼프는 당황했다. “당신은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죠.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이에요. 거리를 장악한 무리죠. 이번 주말 어떤 도시에서 누군가 이들을 비행기에 태웠어요. 여객기는 검은색 유니폼 차림에 이런저런 장비를 갖춘 폭력배(thugs)로 거의 꽉 찼죠. 그들이 비행기를 탄 거예요.”

인터뷰를 지켜본 필자도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인가. 누가 비행기를 탔다고? 검은 유니폼이라니. 닌자들인가? 아니면 갤러리 소유주나 출판사 중역들? 일상복 차림의 뉴욕 토박이들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화제가 여성 유권자들로 넘어가자 트럼프는 심하게 버벅댔다. 여성 유권자와 관련한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들은 도시 외곽지역의 여성들에 대해 얘기합니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이고 ‘그들’이 도시 외곽지역 여성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을 그에게 전해준 ‘그들’은 또 누구인지 트럼프는 밝히지 않았다. “그들은 안정과 안전을 원합니다. 그들은 안전을 확보해야만 합니다.” 이렇듯 두서없는 말을 해가며 트럼프는 시위와 폭동의 책임을 바이든에게 돌렸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수습해야 할 현직 대통령은 바이든이 아니다. 게다가 바이든은 올해 공개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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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바이든은 폭동을 중단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트럼프는 단언했다. ‘그는 약해 빠져서’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면 누가 컨트롤 한다는 건가. 잉그러햄의 질문에 트럼프는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트럼프는 흑인과 갈색 피부의 시민들에 대한 부적절한 경찰 폭력을 골프를 칠 때 경험하는 입스(yips), 즉 과도한 중압감에 의한 고질적 퍼팅 난조에 비유했다. ‘경찰이 목을 조르고 등 뒤에서 여러 발의 총격을 가하는 것’은 훌륭한 골퍼가 과도한 중압감 때문에 3피트 거리의 퍼트를 놓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단순한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주장이다.

현직 대통령이 비교적 우호적인 인터뷰에서조차 터무니없고 인종주의적인 음모론 폭탄을 쏟아내며 시위 사태에 기름을 끼얹자 바이든은 유권자들을 향해 “내가 정말 그의 말처럼 폭동을 부추기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로 보이느냐”며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바이든은 급진적 사회주의자라기보다 뉴포트 연안에 호화로운 요트를 띄우고 한 세대를 풍미했던 동시대의 스타 앤마거릿에 눈길을 고정한 채 와인 잔을 기울이는 사교계의 명사에 가까워 보인다. 아무리 봐도 트럼프가 묘사한 사회주의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 트럼프가 “이봐, 내가 정말 파시즘에 꽂힌 인종주의 성향의 독재자처럼 보이나”라고 묻는다면 무척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될 것 같다. 필자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어쩌죠 대통령님, 생각해보니 당신은 파시즘에 꽂힌 인종주의 성향의 독재자가 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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