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국제법 전문가가 ‘국가면제(주권면제)’의 예외성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의 방어논리에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9일 고(故) 곽예남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과 유족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다섯 번째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국제법 전문가인 백범석 경희대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해 일본 측이 내세우는 주권면제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며 위안부 사건에서는 예외로 다뤄져야 한다고 증언했다.
백 교수는 “심각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실효적인 구제를 막고, 다른 구제 수단이 없는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만큼은 최소한 피해자가 자국 법원에서 재판을 통해 구제받을 권리는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인권법 또는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을 이유로 제소된 경우 항상 주권면제의 예외가 인정돼야 한다는 국제관습법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주권면제가 인정돼야 한다는 국제관습법이 있는지도 불명확하다”고 설명했다.
국가면제란 한 주권국가나 그 주권국가의 재산이 다른 나라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원칙이다. 즉 주권국가는 스스로 원치 않는 한 다른 나라의 법원에서 재판받지 않을 특권을 누린다는 것이다.
피고인 일본은 이 원칙을 내세워 한국 법원이 이번 소송을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원고 측의 대리인단은 국가면제가 불멸의 법리가 아니며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에까지 적용될 수는 없다고 맞서왔다.
재판부는 오는 11월11일 원고와 피고 측의 최종 변론을 듣고 심리를 종결하기로 했다. 이날 재판에는 원고 중 한 명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직접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이 소송은 2016년 위안부 생존 피해자들과 이미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의 유족 등 21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했다. 일본 정부가 헤이그 송달 협약을 근거로 우리 법원이 송달한 소장을 여러 차례 반송하면서 3년 만인 지난해 11월 첫 변론이 열렸고, 재판이 지연되는 동안 고령인 피해자 일부가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