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난 1995년 새 여권을 발급받았다. 자신의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 중 ‘원’이 영문 ‘WEON’으로 기재된 여권이었다. 2018년 여권 유효기간이 만료되자 A씨는 영문이름 ‘WEON’을 ‘WON’으로 변경해 외교부에 여권 발급 신청을 했지만 반려됐다. A씨의 변경 신청이 여권법에 명시된 변경사유인 ‘여권의 로마자 성명이 한글 성명의 발음과 명백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A씨가 기존에 쓰던 ‘WEON’도 ‘원’의 표기 방식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 외교부의 주장이었다. 외교부에 이어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A씨는 결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법정에서 A씨 측은 “여권과 신용카드에 기재된 영문 성명이 달라 해외 사용을 거부당하거나 여권에 기재된 영문 성명의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지적을 받는 등 불편함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외교부가 합리적 근거 없이 성명 변경을 거부했으며 이는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항변했다. A씨 측은 “‘원’을 ‘WEON’으로 표기하는 경우는 포털 사이트 로마자표기법에도 등록돼 있지 않다”며 “여권법상 명백히 부정적 의미를 갖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이정민 부장판사)는 A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여권 영문 성명 변경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여권의 로마자 성명은 외국 정부가 우리나라 여권을 발급받은 사람에 대해 출입국 심사 및 체류자 관리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라며 “변경을 폭넓게 허용하면 외국에서 우리 국민에 대한 출입국을 심사하고 체류상황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갖게 되고 이러한 현상이 누적되면 우리나라 여권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돼 우리 국민의 해외출입에 상당한 제한과 불편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단순한 발음 불일치를 모두 변경사유로 규정할 경우 여권의 로마자 성명 변경의 대상이 과도하게 많아질 우려도 있다”고 판시했다. 또 “국립국어원에서 ‘WEON’은 ‘원’의 발음과 명백히 불일치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