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디지털은행 '방판법 족쇄'...이번엔 풀릴까

계약후 2주내 청약철회 가능해

원금 비보장 상품 판매 어려워

"비대면시대 동떨어진 법" 지적에

개정 반대해온 공정위도 전향적

하나은행 PB 및 세무, 부동산, 법률 등 전문가가 내점이 불편한 손님과 스마트폰을 연결한 화상상담 서비스를 통해 상담하고 있다./사진제공=하나은행하나은행 PB 및 세무, 부동산, 법률 등 전문가가 내점이 불편한 손님과 스마트폰을 연결한 화상상담 서비스를 통해 상담하고 있다./사진제공=하나은행



A은행은 지난해 소비자가 화상으로 투자 상담부터 상품 가입까지 원스톱 자산관리(WM)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설계해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했다. 지금은 금융사가 영업점 밖에서 금융상품을 팔면 방문판매법에 따라 소비자가 14일 이내 계약을 철회할 수 있어 펀드·채권처럼 원금보장이 안 되는 투자상품은 직원 방문이나 원격 서비스를 통한 가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투자자는 방문 상담을 받고 펀드에 가입하고 싶어도 직접 다시 영업점을 찾아야 한다. 여태껏 ‘찾아가는 은행’ 서비스가 반쪽짜리에 머무른 이유다.

A은행은 이 서비스를 활용하면 소비자가 은행원과 화면을 통해 얼굴을 맞대고 자세한 상품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다 모든 과정이 녹화되기 때문에 불완전판매 위험이 원천 차단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위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샌드박스는 불허했다. 방판법은 소관부처가 공정거래위원회여서 샌드박스 적용 대상이 아닌데다 논란이 될 수 있어 중장기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A은행 관계자는 “방판법은 ‘대면’과 ‘사업장’의 의미를 철저하게 물리적인 위치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어 비대면 시대에 맞지 않는 법”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금융소비자들의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은행들이 이에 부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제까지 개정을 반대했던 공정위도 금융 관련법에 소비자보호 장치가 충분히 갖춰지면 제외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이번에는 규제 개선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점을 찾는 고객이 갈수록 줄면서 은행들은 각종 비대면 채널이나 찾아가는 서비스로 영업점 밖 소비자와의 접점을 강화하고 있지만 해묵은 방문판매법에 막혀 반쪽 영업에 그치고 있다. 태블릿PC·전자문서 등으로 외부에서도 거의 모든 금융업무 처리가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입출금계좌 개설 같은 단순 업무만 하는 실정이다. 펀드처럼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을 영업점 밖에서 팔았다가 소비자가 손실을 보고 계약을 취소하면 은행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해 은행들로서는 사실상 판매하기 어려운 구조다. 한 은행 관계자는 “펀드는 시장이 불안할 땐 하루에도 10%씩 수익률이 출렁이는데 정당하게 상품을 판매해도 소비자가 손실 시점에 철회권을 행사하면 은행은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 때문에 국회에서도 금융투자상품을 방판법 적용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수차례 논의했지만 불완전판매 우려에 8년째 공회전만 했다. 특히 법 소관부처인 공정위는 복잡한 투자상품을 예외로 두는 것은 소비자 보호에 어긋나는데다 특정업종만 제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다만 보험업법에서 철회규정을 둔 보험은 예외로 두고 있다.

관련기사



방판법 개정은 21대 국회에서도 테이블에 올랐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6월 금투상품을 방판법 적용범위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금융권은 금융소비자 보호가 대폭 강화된 만큼 이번에도 방판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이중 규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내년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기존에 보험·투자자문에만 보장됐던 청약철회권을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 관련법에 다층적인 소비자 보호 장치가 있고 잇단 사모펀드 사고로 투자자 숙려제도, 비예금 판매 가이드라인 등 더 철저한 보호 규정이 마련되고 있다”며 법적 공백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변화에 이번에는 공정위도 전향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금소법이 청약철회 규정을 둔 만큼 구체적인 시행령이 마련되면 방판법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며 “금융 관련법에서 소비자 보호 장치를 충분히 둔다면 금투상품을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전했다.


빈난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