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시그널] 작년 7.6조→올 0.7조…기업, 해외 M&A ‘엔진’ 껐다

코로나 불확실성·승자저주 경험에

국민銀 캄보디아 업체 인수가 유일

"위험관리 치중하느라 실기" 우려




올 들어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거래가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兆)원 단위를 뛰어넘는 ‘빅딜’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 내부의 M&A 검토마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기업들이 일제히 위험관리로 전환하면서 해외 신성장동력을 발굴할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와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올해 국내 상장사의 ‘크로스보더(국경간 거래)’ 딜은 지난 4월 KB국민은행의 캄보디아 프라삭 마이크로파이낸스 인수 단 1건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프라삭은 캄보디아 1위 소액대출 금융기관이며 인수금액은 지분 70% 기준 7,340억원이다. 이어 지난달 국내 중견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에이스에쿼티파트너스가 캐나다 5세대(5G) 부품업체인 ‘프리사이슬리 마이크로테크놀로지’ 지분을 인수하기는 했지만 창업주와 지분을 나눠 갖고 있어 투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대형 해외 딜이 쏟아졌던 것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국내 대기업들은 최근 몇 년 동안 해외 시장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대형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지난해(거래완료일기준)만 해도 KCC(002380)컨소시엄이 3조4,800억원을 투자해 세계1위 실리콘업체 모멘티브를 인수했고 CJ제일제당(097950)은 미국 식품업체 쉬완스컴퍼니를 약 1조5,000억원에 사들였다. 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가 보유하고 있는 한온시스템(018880)도 지난해 글로벌 부품업체인 마그나인터내셔널의 유압제어사업부를 1조3,800억원에 매입하면서 조원 단위 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소수지분이기는 하지만 SK그룹의 베트남 빈그룹 지분(6.1%) 매입도 미래를 내다본 공격적 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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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딜 ‘가뭄’의 직접적인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불확실성 확대다. 또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돈을 풀면서 기업 실적과 자본 시장이 반대로 움직이는 괴리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IB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잠재 매물에 대한 예비 실사가 중단된 상태에서 오히려 몸값은 오르고 있어 돈을 쓸 곳만 찾던 대기업그룹도 대부분 투자 검토를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비주력 사업을 잇달아 정리해 현금을 확보한 LG그룹도 시장 기대와 달리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 등 자급력이 있는 곳은 사법 리스크 등에 발목이 잡혀 공격적인 해외 M&A 결정도 쉽지 않은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M&A가 대부분 기업 재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승자의 저주’ 현상이 나타난 것도 딜이 실종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KCC는 모멘티브 인수 차입금의 영향으로 올 들어 총차입금(연결)이 5조420억원까지 치솟자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기존 ‘AA’에서 ‘AA-’로 끌어내렸다. KCC는 이에 따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토지 등을 1,592억원에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모멘티브가 흑자전환하지 못할 경우 과거 백기사로 나서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9.10%)까지 매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온시스템도 마그나사업부 인수 이후 신용등급에 ‘부정적’ 꼬리표를 달아 시장성 자금조달에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물며 삼성전자가 인수한 하만카돈도 아직까지 적자를 내고 있다”며 “코로나 불확실성이 제거되기 전까지는 해외 M&A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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