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공감] 인생 후반전에서 깨달아야 할 것들

우리는 생애의 초반이나 전반부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행복에 대한 큰 갈망과 희망과 포부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생애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다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가 그처럼 갈망하던 사랑이나 행복이나 야망이 한낱 망상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의 후반부에서도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는 여전히 생의 전반부에 살고 있거나 아니면 바보이다. (…) ‘잘살기는 바라지도 않아, 아프지 않고 살 수만 있으면 좋겠어.’ 당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면 당신은 이미 생의 후반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야, 뭔가 좋은 수가 있나보다’ 하고 반가워했지만 나이가 들고, 인생을 겪고 난 후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 ‘혹시 불길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쇼펜하우어, ‘사랑은 없다’, 2004년 해누리 펴냄)


쇼펜하우어는 철학계의 심술궂은 투덜이다. 염세주의자에 독설가, 비관론자, 허무주의자, 염결주의자인 이 노철학자는 이마에 깊게 팬 주름만큼 제멋대로 흘러가는 세상과 인생에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사랑이나 행복, 꿈, 희망 같은 환상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아픔을 생의 ‘디폴트’ 상태로 여기는 이 철학자는 아프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가끔 인생이 욕심만큼 안 풀려 초조하고 갑갑할 때면, 나는 사랑과 희망이 넘실거리는 책을 덮고 이 완고하고 냉소적인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네가 지금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은 ‘한낱 망상의 산물’이라며 찬물을 끼얹는 쇼펜하우어의 일갈을 듣고 있으면, 등허리를 꼿꼿이 세우게 된다. 장밋빛 커튼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던 전반생에서 인생 후반부로 넘어가는 일은 괴롭지만, 결국 우리는 환상보단 아픔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게 된다. 인생 후반전은 그렇게 환상이 산산조각난 다음, 그 유리파편을 밟고 지난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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