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근무현황과 만족도’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조사에 응한 385명(남성 98%)의 전문의 중 85%인 327명은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에서 근무했고 11%는 의원을 운영했다. 71%는 40~50대 연령층이었다. 세부 전공은 폐·식도를 수술하는 일반흉부, 성인심장, 혈관, 소아심장, 외상·응급 순이었다.
◇대형병원 전문의 80%“업무 과중”…전공의 기피해 명맥 끊길 판
대형병원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평일 근무시간은 하루 평균 12.7시간(주 63.5시간)이었다. 하루 8시간을 넘겨 일한 평일 근무일수는 주당 평균 4.6일이었고 대부분 토·일요일 중 하루는 근무했다. 월평균 당직(계획된 밤샘 근무로 다음날 휴식 없음)일수는 평균 5.1일, 출근하거나 병원 밖에서 응급상황 등에 대비해 대기근무(on-call)하는 날도 월 10.8일로 조사됐다. 월평균 16일, 즉 이틀에 한 번꼴로 당직·대기근무하는 셈이다.
대형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가운데 80.5%(수도권 대학병원은 88%)는 ‘업무가 과중하다’고 했다. 17%는 과중한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입원치료를, 9%는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현재의 업무강도가 지속될 경우 60.5%는 ‘감당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종합병원 이상 대형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중 52%(전문의 취득 6~10년 이하는 66%)는 과중한 업무로 신체적·정신적으로 지친 번아웃(burnout) 상태였다. 36시간 이상 연속근무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의 응급수술, 잇단 응급수술, 밤샘 수술 후의 외래진료 등이 원인이었다. 49%는 ‘번아웃으로 인해 환자에게 위해가 되거나 위해가 될 뻔한 상황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94%는 이로 인해 ‘향후 환자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했다.
병원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월평균 당직근무일수는 전문의 수와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났다. 흉부외과 전문의가 2~4명이면 월평균 6.5일, 5~9명이면 5.5일, 10명 이상이면 3.5일 당직근무를 섰다. 서울 3.5일, 경기·인천 5.5일, 기타 6.1일로 지역별 편차도 컸다. 학회는 “상대적으로 응급·당직근무가 적은 일반흉부 전문의가 조사 대상자의 50%를 넘어 응급·당직이 많은 성인·소아심장, 혈관, 외상 전문의의 당직근무일수는 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전체 평균을 훨씬 웃돌 것”이라며 “흉부외과의 규모가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근무환경 개선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을 하기 때문에 ‘필수의료과’로 꼽히지만 이들이 근무하는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중 61%는 전공의가 1명이거나 없어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 있었다. 전문의 10명 중 7명은 업무 대비 보상이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보람 느끼지만 74%는 “후배·자녀에게 흉부외과 추천 않을 것”
흉부외과 전문의로서의 성취나 의료행위, 사회적 존중·존경과 관련한 만족도는 각각 57%, 52%로 높은 편이었지만 74%는 ‘흉부외과를 후배나 자녀에게 추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갈수록 악화하는 업무 강도,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없는 삶, 미미한 보상과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흉부외과를 선택한 게 후회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전문의들은 “나이가 들어가는데 계속 야간에 콜을 받고 응급실 진료를 하는 상황이 힘들다” “전공의, 젊은 의사가 없어 제 때 수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월급·대우·승진에서 매우 불리하고 차별대우를 받는다” “보람은 있지만 늘 바쁘고 육체적·정신적으로 너무 힘든데 월급은 턱없이 적다” “서울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전문의 쏠림 가속화로 가르칠 제자가 없다” “환자가 나빠지면 책임은 무한대”라는 하소연도 했다.
학회는 이런 위기상황을 극복할 단기 대책으로 흉부외과 현황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 흉부외과 전문의에 대한 직접적 지원을 꼽았다. 학회는 “(정부가 낮은 수가를 보전하기 위해 지급하는) 흉부외과 지원금 대부분이 병원이나 다른 과에 투자되고 있어 당직비가 형편 없고 온콜 수당은 아예 없다”며 “지원금이 흉부외과에 쓰이도록 철저한 조사와 강제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흉부외과 생태계 개선을 위한 장기대책도 제안했다. 학회는 “정부가 흉부외과 전문의 양성방안을 학회·교육기관과 논의하고 흉부외과를 ‘국가 필수의료’로 지정해 국가 차원의 투자와 건강보험 수가(서비스 가격) 현실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낙수 효과로 흉부외과 지원자도 늘어날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현재 흉부외과 지원자가 의대 졸업생 1,000명당 5~10명임을 감안할 때 의대생 정원을 연간 400명 늘려도 흉부외과 지원자는 연간 2명 미만 늘어나는 데 그쳐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