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경제동향

코로나에 ‘현금 방파제’ 쌓은 기업들...보유 현금 1년새 47조 급증

[코스피200 상장사 149곳 현금흐름 분석]

상반기 영업활동현금흐름 80조

코로나 불구 작년보다 39%↑ '역설'

영업익 감소 속 매출채권 회수 탓

대출·증자 늘려 재무현금흐름 '+'

기업 투자여력 내년에도 모자랄듯




국내 대형 상장사들이 보유한 현금이 1년 사이에 50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되는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자 ‘현금 방파제’를 높이 쌓아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서울경제가 한국거래소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를 통해 코스피200 상장사(지주사·금융사 제외) 149곳의 2017~2020년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현금 및 현금성 자산(연결·개별재무제표 기준)이 총 171조5,56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125조4,260억원)보다 46조1,301억원(36.8%) 늘어난 액수다. 지난 2017~2019년 이들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118조~125조원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1년 사이에 현금 보유량이 급격히 늘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중 패권 경쟁 역시 불거지면서 대기업들이 ‘장기전’에 대비하고자 곳간에 현금을 쌓아놓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를 위해 거래처로부터 매출채권을 빠르게 회수하는 동시에 대출·자본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더구나 코스피200에 들어와 있는 상장사들이 사실상 국내 대표 기업으로 거론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초체력이 튼튼한 우량 대기업마저 보수적인 재무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영업활동현금흐름 증가의 ‘역설’=국내 대형 상장사의 현금이 나온 ‘원천’을 살피면 코로나19발 기업 불황이 더 여실히 드러난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대표적이다. 올해 코스피200 상장사들이 50조원 가까운 돈을 곳간에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통해 확보한 현금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코스피200 상장사 149곳의 올해 상반기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총 80조9,021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58조2,455억원)에 비해 38.9%나 증가한 수치로 2017년(78조5,168억원)이나 2016년(71조1,733억원)보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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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 같은 영업활동현금흐름 증가가 긍정적인 소식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가운데 매출채권을 최대한 회수함으로써 영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을 늘렸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149개 상장사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 18.2%씩 감소했다. 반면 이들 기업의 올해 상반기 매출채권은 총 158조원으로 집계돼 지난해 상반기보다 약 21조원(11.7%) 줄었다. 같은 기간 매출액 감소폭(5.8%)보다 더 크다. 매출액 규모에 비해 매출채권을 회수하거나 파는 속도가 빨랐다는 뜻이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올해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좋은 이유는 수익성 높은 매출이 많아서가 아니라 매출이 정체된 가운데 과거 외상으로 판매한 몫이 현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금융시장 통한 자본 조달…이례적 ‘플러스’=금융·자본시장을 통한 현금 조달 역시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코스피200 상장사 149곳의 재무활동현금흐름 합계는 24조330억원으로 나타났다. 2017~2019년 재무활동현금흐름이 계속 ‘음수’를 나타냈던 것을 고려하면 바람직한 신호는 아니라는 해석이다. 재무활동현금흐름이 늘었다는 것은 대출이나 자본을 늘리거나 배당을 줄였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가령 배당금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보다 9.7% 감소한 14조8,901억원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유·무형자산 투자 역시 위축되고 있다. 코스피200 상장사 149곳의 올해 상반기 투자활동현금흐름 지출 합계는 전년 동기 대비 12.6% 증가한 61조2,984억원으로 집계됐다. 유형자산 투자에 쓴 현금 역시 지난해 상반기보다 9.5% 늘어난 62조133억원으로, 무형자산 투자에 쓴 돈은 18.9% 늘어난 5조7,313억원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유형자산 지출액은 지난해보다 5.15% 감소한 43조5,712억원으로 줄어든다. 무형자산 지출액 증가율도 삼성전자를 빼면 18.9%에서 2.2%로 줄어든다.

문제는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당분간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는 점이다. 그나마 올해에는 기업들이 매출채권을 빠르게 회수하고 대출·증자를 늘려 현금을 확보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가 호전되기 전까진 보수적인 재무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로 미래 전망이 불확실하니 기업들이 최대한 보수적으로 현금을 쌓고 투자 계획을 보류하는 사례가 많다”며 “코로나19 관련 전망이 긍정적으로 바뀔 때까지는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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