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을 기점으로 한국 현대사는 100년을 넘어섰다. 세월이 흐르면 기억도 사상도 잊힌다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시대정신과 사상이 무엇이 있을까.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책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 2018~2019년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펴낸 이 책은 3·1운동 이후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지식인 60명과 그들의 대표 저서를 담았다. 1947년 김구의 ‘백범일지’부터 2004년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까지 매우 넓은 시간적 스펙트럼을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100년 현대사를 대표하는 60인을 선정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김구·여운형 등 독립운동가와 이승만·박정희·김대중·노무현 등 정치인, 이광수·박경리·최인훈·조세희 등 문인들까지 폭넓게 다룬다. 이들의 통찰이 지식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역사적 존재감도 엄청나기 때문에 소개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정치경제학자 신영복,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백낙청·김윤식·김우창 문학평론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 대표적 지식인들도 소개하고 있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다양한 지식인을 소개하고 있기에 균형감각은 필수다. ‘선진화’ 담론으로 대표적 보수 경제학자로 평가되는 박세일에 대해 이 책은 보수적 개혁담론을 통해 참여적 지식인의 길을 걸어왔으며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새로운 국가전략을 정교화했다고 평가한다. 개혁 성향 경제학자인 정운찬에 대해서는 ‘개혁적 케인스주의’를 대표한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명박 정부 당시 국무총리로서는 실제적 성과가 적었다고 지적한다. 문제적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드러낸다. 소설가 이광수를 “일제에 대한 정신적 양가감정이 일제강점기 초기엔 독립운동으로 나타났지만 후기엔 친일로 드러났다”고 평하는가 하면 ‘한국사상사’ 등 철학사상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지만 ‘국민교육헌장’ 등 박정희 정권의 정당화에 나섰던 박종홍에 대해선 ‘정치적 도덕가’의 길을 걸었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대목은 ‘미래를 향한 전망’이다. 김 교수는 “지나간 100년이 과거의 역사라면, 다가올 100년은 미래의 역사다. 우리가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까닭은 과거에 대한 탐구가 미래 전망의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500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에서 지식인 60명 모두의 사상과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지식인들의 사상을 접하고 공부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기는 충분하다.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