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들이 택배배송 이외에 물류 분류작업까지 동원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오는 21일부터 분류작업을 무기한 거부하기로 했다. 주요 택배회사 기사의 10%인 4,000명선이지만 배송물량이 급증하는 추석을 열흘 앞둔 시점이어서 작업거부가 현실화할 경우 운송 차질에 따른 배달 대란이 우려된다. 정부와 택배업계가 지난 16일 간담회를 열고 하루 평균 1만여명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지만 급증하는 배송 물량을 고려할 때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17일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000여명의 택배기사들이 21일부터 분류작업을 거부한다고 발표했다.
유통가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일부 택배기사들이 과중한 업무 부담을 호소하며 다음주 분류작업 거부를 결의해 일각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물류 대란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올해는 비대면 추석의 영향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대신 선물을 보내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이들의 분류작업 거부가 장기화될 경우 일부 지역 택배 배송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주요 유통업체들은 이번 주까지 받은 사전예약 선물세트의 배송을 다음주부터 본격화한다. 여기에 이번 주말부터 매장 본판매를 진행하면서 다음주 배송 물량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는 비대면 추석의 영향으로 선물 수요가 높아지면서 배송 물량이 치솟고 있다. 실제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추석 선물세트 사전 예약 기간(8월13~9월15일) 전체 선물세트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도 작년보다 40.5%나 급증했다.
통상 사전예약 기간에는 기업 등 법인고객의 대량 주문이 많지만 올해는 개인 소비자들도 고향에 내려가는 대신 선물을 보내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주문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사전 예약 물량 중 5개 이하 구매 비중은 전년 74%에서 82%로 크게 늘었다. 특히 1~2개 구매 고객 비중이 올해 77%로 작년 대비 7%포인트가량 상승하며 사전예약부터 개인 소량 구매 고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더해 유통가는 명절 연휴 직전까지 선물세트를 신속 배송하기 위해 배송 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온라인에서만 선보였던 ‘바로 배송’ 서비스를 본점 오프라인 매장에도 적용했다. 접수 마감으로 온라인 구매 시기를 놓치거나 명절에 임박해 구매해도 3시간 이내에 서울 전 지역에 배송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연휴 직전인 29일까지 운영한다”며 “내년 설부터는 서비스 제공 점포를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분주한 유통가와 달리 택배업계는 무리한 노동을 이유로 연휴 직전 파업을 예고해 혼란이 일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1일 4,000여명의 택배 노동자들이 분류작업 거부한다”고 밝힌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근로 계약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택배 분류 작업은 택배 배송 3단계 중 처음을 차지한다. 컨베이어벨트로 택배가 들어오면 택배 기사의 이름 등을 보고 자신의 차에 실어야 할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이다. 총 업무 시간 13~16시간 중 절반을 매달릴 수밖에 없어 과로사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대책위의 주장이다.
분류작업을 거부하는 근본적 원인에는 일반 근로계약이 아닌 특수근로계약이 있기 때문에 파장이 장기화 될수록 택배사의 부담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택배기사의 대부분은 사업자 등록을 해 물류업체와 위탁계약을 맺고 배송 건마다 수수료를 받는다. 결국 업무 시간의 절반을 분류작업에 써봐야 수입 증가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민주노총은 특고 계약이 4대보험료·퇴직금 등 부담을 줄이기 위한 사용자의 편법이라며 일반 근로계약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대책위의 이번 핵심 요구는 택배사의 분류작업 인력 투입이기 때문에 사태가 크게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책위는 “지금이라도 택배사가 분류작업 인력투입 등을 결단해야 한다”며 “택배사가 과로사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면 언제든 분류작업 전면거부 방침을 철회하고 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