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펑루 1호, 동양인 최초 비행 성공

재미 중국인, 일본보다 25개월 앞서 동력비행기 제작

동양인이 최초로 설계 제작한 동력비행기 펑루 1호가 1909년 9월 21일 시험비행을 준비 중인 모습.동양인이 최초로 설계 제작한 동력비행기 펑루 1호가 1909년 9월 21일 시험비행을 준비 중인 모습.



1909년 9월21일 일몰 직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의 야트막한 구릉. 중국인 펑루(馮如·29)가 제작한 ‘펑루 1호’가 지면에서 솟아올랐다. 높이 4.5m까지 오른 펑루 1호는 언덕을 돌아 800m를 날았다. 동양인이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순간이다. 펑루의 비행은 일본보다 빨랐다. 외국 비행기로 일본인이 처음 비행한 게 1909년12월. 일본인이 제작한 비행기가 등장한 시기는 1911년 10월로 펑루가 25개월 앞선다.

펑루의 비행 성공은 일본과 차원이 달랐다. 국가의 지원과 관심 속에 진행된 일본의 항공산업과 달리 펑루는 개인의 의지와 역량, 독학으로 금자탑을 쌓았다. 광둥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펑루는 11세에 삼촌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공장을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라이트 형제가 1903년 동력 비행에 성공하자 그는 비행기가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항공기술 습득에 매달렸다. 화교사회신문에는 비행기의 중요성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현대 무기에서 전함이 가장 중요하지만 너무 비싸다. 대신 비행기를 수백, 수천대 생산하면 중국은 침략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고에 재미 중국인들은 돈을 모았다. 화교들이 모아준 1,000달러로 1906년 오클랜드에 비행기제조회사를 설립하고 연구한 끝에 비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은 ‘동양의 라이트, 하늘을 날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항공 분야에서 미국 수준에 도달하는 게 펑루의 목표’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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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은 미국 신문의 보도에 크게 감동해 펑루에게 지원금을 보냈다. 펑루는 뚜렷한 성과를 냈다. 1911년 2월 펑루 2호는 최대 시속 105㎞를 내며 35㎞를 날았다. 당시에는 최고의 성능에 미국업체들의 스카우트 제의가 빗발쳤으나 펑루는 장비·기술자료와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신해혁명에 성공한 쑨원의 제의에 따라 광둥혁명군 비행대장을 맡았다. 열악한 연구환경과 박봉에도 그는 국산 항공기 개발에 몰두하다 1912년 시험비행에서 추락, 목숨을 잃었다.

국내에서는 중국의 고도정밀기술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과연 그럴까. 중국은 항공산업의 역사를 111년이라고 명시한다. 펑루가 출발점이다. 지난 2019년에는 항공산업 110주년을 기념해 펑루 1호 복원 행사도 치렀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나라를 위해 비행기를 제작하려던 펑루는 수많은 중국 항공 엔지니어들의 귀감이다. 돈보다 조국을 먼저 생각하던 엔지니어, 펑루가 지녔던 헌신과 열정이 우리에게 있는지 모르겠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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