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회에 국회의원 자녀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논문 제출이나 부적절한 교과 외 활동 등에 대한 사항에 대해 전수조사할 것을 제안한다”(2019년 9월27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입시 특혜 논란 당시)
“이 기회에 모든 국회의원과 그 친인척의 재산, 상임위원회 발언, 의정활동 간의 이해충돌 전수조사를 요청한다”(표창원 민주당 의원, 2019년 1월28일, 손혜원 전 열린민주당 의원 및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이해충돌 관련)
“이참에 공수처를 만들어 300명 국회의원을 전수조사해 주식과 부동산 투기를 한 국회의원들 조사가 필요하다”(안민석 민주당 의원, 2019년 4월 14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주식투자 관련)
‘국회의원 전수조사’는 국회의원의 비위·특혜·이해충돌 등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늘 등장한 카드입니다. 여기에 21일 또 한 명의 국회의원이 더 전수조사 주장을 보탰습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이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의 ‘가족 회사 국토부 공사 수주 논란’이 불거지자 “이해충돌 관련 300명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제안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법안 심사과정은, 국민에게는 국민의 삶을 결정짓는 순간입니다. 국회의원은 그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이번 기회에 이해충돌과 관련 300명 국회의원의 전수조사를 해야 합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 마련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문화된 국회 윤리특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민의 눈이 국회를 지켜보고 있습니다(이원욱 의원, 2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그런데 이 같은 전수조사 주장이 실천으로 옮겨졌을까요. 답은 ‘아니다’에 가깝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수조사 주장이 제기된 것은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피감기관 외유성 출장 △조 전 장관 교육 특혜 △이 헌법재판관 주식투자 △손 전 의원 이해충돌 논란에 이번까지 총 다섯 번입니다.
이 중 실제 전수조사로 옮겨진 사례는 ‘피감기관 외유성 출장’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국회 자체 조사가 아니라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조사였습니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 출장을 다녀온 국회의원 38명의 명단과 조사 내용을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문 의장은 해당 명단을 정보공개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국회의원 활동 심사자문위원회를 설치해 문제가 있다면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회부된 사람은 ‘0명’이었습니다.
국회 자체 전수조사가 흐지부지된 것은 다른 전수조사 주장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 전 장관의 입시비리 의혹으로 시작된 전수조사에는 여야가 뜻을 모았습니다. 민주당,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바른미래당, 정의당 4당이 모두 관련 특별법을 내며 기대를 모았습니다. 정의당은 소속 의원 자녀의 대학 입시를 자체 조사한 결과까지 공개하며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잠시, 여야가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전수조사는 자연스레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문 의장 주재하에 3당 원내대표가 회동한 후,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수조사 제안 관련) 어느 쪽이라고 이야기는 안 하겠다. 한쪽은 곧 특별법안을 발의하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다른 한쪽은 국정조사와 연계돼있다고 이야기했다”며 책임을 넘겼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원뿐 아니라 고위공직자까지 논의해야 하고, 조국 전 수석에 대한 국정조사와 맞물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야가 공방을 벌이며 전수조사는 다시 유야무야돼버렸습니다.
이처럼 ‘전수조사’ 주장은 같은 패턴을 반복합니다. ①특정 국회의원 혹은 고위공직자의 비위 의혹 제기 ②상대 측 국회의원에 대한 맞불식 의혹 제기 ③전수조사 주장 ④ 전수조사 무산이 바로 그것입니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논란이 불거지자, 민주당은 장제원·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한 이해충돌 문제를 제기하며 맞받아쳤습니다. 민주당은 장 의원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는 대학에 특혜를 제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장 의원의 가족이 운영하는 동서대학이 ‘역량강화대학’ 에 포함돼있는데, 이 역량강화대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는 지적입니다. 송 의원에 대해선 자신의 지역구인 김천역 앞에 사무실을 소유하고 있는데 “김천역을 ‘제2의 대전역’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이후 표창원 의원 등이 이해충돌 전수조사를 주장했지만 정작 국회 차원의 전수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 특혜 논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당은 조 전 장관이 야당의 집중포화를 받자 나 원내대표 딸의 ‘성신여대 부정 입학 의혹’ 등을 부각시켰습니다. 이에 앞서 설명한 대로 여야가 전수조사에 원칙적으로 동의했지만 결국 무산됐습니다.
이처럼 전수조사론이 급물살을 타더라도 쉽게 성사되지 않는 이유로는 “개별 의원들의 반대가 집합적으로 모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자녀 입시 전수조사 정국 당시 “특목고·유학생 출신 자녀를 둔 의원들은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아무도 현실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쉽게 합의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고 전했습니다. 개별 의원들이 마이크를 쥐고 전수조사를 외치더라도 300명 의원이 뒤로 반대하면 정작 전수조사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국회의원 비위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전수조사론은 ‘양치기 소년’ 같은 이야기가 돼버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각 당이 자신들의 청렴함을 주장하면서 전수조사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실천하지는 않아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투명한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전수조사를 시행하거나, 혹은 비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공직자의 이해관계 충돌 대상에 국회의원도 포함하는 내용의 권익위 이해충돌방지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