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시간을 내 여행을 떠나던 시대는 지나가고 일상이 여행인 시대가 찾아왔다. 멀리 떠나지 않고도 가까운 곳에서 잠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걷기에 가장 좋다는 요즘 서울관광재단이 멀리 가지 않고도 여행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마포구 도보 관광코스 5선을 선정했다. ‘경의선숲길’부터 ‘아현동 고갯길’ ‘마포나루길’ ‘성미산 동네길’ ‘하늘 노을길’까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마포구 구석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서울 생활에 찌들어 있는 이들에게는 그저 그런 동네일지 모르지만 한 걸음 다가가 보면 볼거리부터 먹거리, 즐길거리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경의선숲길은 도심 속 힐링 산책로다. 경의선 폐철로 구간을 공원화한 이곳은 용산구 용산문화센터에서 마포구 가좌역까지 총 6.3㎞를 연결하고 있다. 마포구 중심을 종단하며 관광 명소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알짜배기 코스다. 경의선숲길은 전철역을 기준으로 네 개 구간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공덕역의 염리동·대흥동 구간은 왕벚나무, 산벚나무가 우거진 산책로와 운동 기구, 벤치, 분수대 등을 갖춘 근린공원으로 조성됐다. 산책로 바로 옆길에는 근대한옥을 카페와 식당으로 개조한 가게가 많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니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대흥역 쪽 염리동은 조선 시대 때 전국의 소금 배가 드나들었던 마포나루터와 가까워 소금장수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다. 재개발 예정지인 이곳에 벽화로 단장한 ‘소금길’이 조성돼 있다. 벽화를 찾아 언덕배기를 오르내려야 하지만 곧 사라질 동네 풍경을 하나라도 놓치기가 아쉽다. 지난 2016년 10월 홍대입구역과 와우교 사이 250m 구간에 경의선책거리가 조성돼 경의선숲길의 새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열차 객차 모양 건물을 짓고, 이곳에서 책을 전시·판매한다. 커뮤니티 센터에서는 북 콘서트와 같은 다양한 책 관련 이벤트도 진행한다.
아현동은 조선 시대 문헌에도 등장하는 오랜 동네로서 대표적인 서민 거주지였다. 아현역 일대 뉴타운 개발을 통해 신축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면서 선호도가 높은 지역으로 탈바꿈 중이다. ‘아현동 고갯길’은 아현역과 애호개역 사이의 골목길로 걷다 보면 재개발 전후의 동네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 아현역 근처 손기정로와 환일길 일대 골목에는 재개발 전의 과도기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근대한옥이 고층 빌딩에 둘러싸여 있거나 마을버스가 다니는 비좁은 고갯길 너머에 고속도로 같은 대로가 뻗어 있다.
아현동의 이런 서민적인 풍경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빛을 발했다. 영화 초반부 최우식(기우 역)이 동네 슈퍼에서 박서준(민혁 역)을 만난 장면과 중반부 박소담(기정 역)이 복숭아를 사 들고 박 사장 집으로 향하던 장면을 아현동 고갯길에서 촬영했다. 영화 속 ‘우리슈퍼’는 실제로는 ‘돼지쌀슈퍼’이며 박소담이 걸어 올라갔던 계단은 슈퍼 바로 옆 골목이다.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수상해 국내외 관광객이 이곳을 성지처럼 방문한다.
마포나루길은 조선 시대 한강을 주름잡던 마포나루와 이 일대에 살았던 당시 인물들의 자취를 더듬어 걷는 길이다. 옛 마포나루터를 찾아보고, 흥선대원군과 토정 이지함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장통 노포에서 식도락을 즐기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고고학자가 유적지를 발굴하듯 표지석만 남은 옛터에서 이야기를 엮어가는 재미가 있다. 이야기의 중심인 아소당터(아소정터)는 흥선대원군의 별장터다. 흥선대원군은 말년을 보낼 별장과 자신의 묘소를 길지에 조성했다. 지금 그 자리는 동도중학교와 서울디자인고등학교의 정문 옆 작은 공터로 남아 있다.
성미산 동네길은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서교동, 연남동, 상암동, 망원동과 접해 있어도 거리가 한산하다. 성산동에는 산이 성처럼 둘렀다는 뜻을 지닌 성미산이 있다. 성미산은 해발 66m에 불과한 산이지만 주민들이 즐겨 찾는 힐링 명소다. 망원역 2번 출구로 가면 망원시장과 망리단길로 이어진다. 망리단길의 식당, 카페, 생활용품점, 책방, 악세서리 숍, 빈티지 편집숍, 문구용품점 등의 상점들이 대체로 협소하고 소박하다. 망원동의 서민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점이 외지인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도심을 벗어나고 싶다면 한강 변에 자리한 월드컵공원을 추천한다. 오후에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평화의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으로 이루어진 월드컵공원을 한 바퀴 도는 트레킹코스에 도전해 보자. 도심 속 공원인데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은 교외로 나들이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 코스는 계단을 제외한 총거리가 8㎞가 넘고, 대부분 그늘이 없는 시멘트길이어서 다리 피로도가 높은 편이다. 아이와 함께 걷거나 가벼운 산책을 원한다면 녹음이 우거진 하늘공원 아래 메타세쿼이아 숲길(희망의 숲길)과 난지천공원만 걸어도 충분하다. 그리 길지 않은 숲길이지만 제법 운치 있어 포토존으로 소문났다. 아직은 호젓한 편이어서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