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하지만 75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드러난 ‘종전선언’을 향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한반도를 둘러싼 ‘비관적 상황’ 속에서 어느 때보다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문 대통령은 ‘연락사무소 폭발’로 상징되는 남북 경색국면 속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종전선언→평화협정→항구적 평화체제)’를 재가동할 수 있는 첫 단추가 결국은 종전선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3일 “대화는 중단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며 “멈춰선 항구적 평화 시계를 분침, 초침이라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대통령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 것이다. 바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당부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불과 1년 8개월만 남아 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유엔총회 화상연설에서 종전선언이라는 단어를 세 차례 언급했다. 국제사회에 종전선언의 당위성을 설득하며 임기 말까지 남북관계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한다”며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 대통령에게 ‘종전 선언’은 어떤 의미일까.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취임 후 7월 ‘베를린 선언’에서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최초 설계 과정에서부터 종전선언이 있었던 셈이다. 실제 남북이 해빙기를 맞았던 2018년에는 종전선언이 눈 앞에 다가온 듯도 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에서 ‘올해 종전선언,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을 개최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9·19 평양 정상회담 직후 참석한 제73차 유엔총회에서 문 대통령은 국제 사회가 종전선언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후 북미 협상이 난항에 빠지며 종전선언은 협상력 있는 카드로 부각되질 못했다. 북한과 미국은 각각 ‘대북 제재 완화’ 와 ‘영변 핵 시설 외 추가 폐기’로 맞섰다. 그 사이에서 종전선언은 설 자리를 잃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불가침’을 의미하는 종전선언이 결국 비핵화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신념이 여전히 확고해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남·북·미 정상회동과 관련해서도 “남북에 이어 북미 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이같은 문 대통령의 구상이 ‘공허하다’는 비판이 국내 보수 진영과 미국 조야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북한의 비핵화를 어떻게 믿고 종전선언부터 덜컥 할 수 있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같은 문제제기와 관련해 종전선언은 북한의 태도에 따라 되돌릴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9월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며 “북한이 약속을 어기면 다시 제재를 강화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스냅백(위반 행위가 있을 시 제재 복원)’ 조건이라도 걸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첫 발을 떼자는 취지다.
종전선언과 관련한 다양한 논란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3일 “정치 지도자의 연설 메시지는 의지, 신념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오늘 아침에 메시지를 발신했다고 오늘 밤에 당장 현실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인내심을 갖고 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