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성실한 가장이자 공무원이 월북시도?···군은 왜 의혹만 키우나

아무런 준비 없이 월북시도 의문

페북엔 성실한 가장·공무원 모습

“사고로 표류하다 넘어가” 분석도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실종됐다 북한 총격에 사망한 A씨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실종됐다 북한 총격에 사망한 A씨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47)씨 사건과 관련해 월북 시도 추정이라는 군의 발표에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공무원에 자녀가 있는 한 가족의 가장이 월북을 시도했다는 정부 발표에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의 페이스북을 보면 성실한 가장이자 공무원의 모습이 엿 보여 월북 추정에는 더욱 의문이 든다.

25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은 지난 21일 오전 11시30분께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에 승선했던 이씨가 실종된 사실을 인지한 뒤 해양경찰과 수색을 벌였다. 군은 이씨 실종 다음날인 22일 오후 3시30분께 북한 선박이 실종자를 발견한 정황을 포착했고, 오후9시40분께 그에게 총격이 가해진 뒤 오후10시11분쯤 시신이 불태워지는 정황도 포착했다.


합참은 이번 발표에서 이씨가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나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두 명의 자녀가 있고 공무원 직업을 가진 한 가정의 가장이 월북할 이유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씨의 페이스북을 보면 가족사진과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 등이 올라와 있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과 글들로 미뤄볼 때 이씨는 성실하게 가정과 사회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돼 월북을 시도할만한 정황이 부족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이씨의 가족도 “자녀 있는 가장이 왜 월북을 하겠느냐”며 반발했고, 이씨의 동료 역시 월북가능성을 부인했다.

정치권도 군이 실종자의 월북을 단정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은 “명백한 게 안 나온 상황에서 군은 월북했다고 하는데 월북 시도가 아닐 수 있다”며 “그렇다면 이분의 명예를 어떻게 회복할 거냐”고 지적했다.

월북을 시도하는 사람이 먼 거리의 바다를 건너면서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는 부분 역시 의문이다. 이씨가 실종된 지점에서 가까운 북한 해역과는 21km에 이른다. 이씨는 해상에 표류할 당시 구명조끼와 작은 부유물에만 의존했던 것으로 군은 파악했다. 아무리 건장한 40대 남성이라도 이런 거리를 헤엄쳐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이와 관련해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무궁화10호 위치는 북한 해역으로부터 10㎞가 넘는데 그 먼 거리에서 월북을 시도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이처럼 먼 지점에서 월북하겠다고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군은 이씨의 구명조끼를 월북의 정황으로 보고 있지만 이씨가 승선한 선박은 어업지도선이며 이곳에서는 누구나 구명조끼를 입어야 한다. 즉 이씨는 선박운영 규정에 따라 구명조끼를 착용했을 가능성이 높고 사고로 바다에 빠져 표류하다 북한 해역으로 넘어갔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고 박왕자씨의 발인식이 열린 지난 2008년 7월 15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서 아들 방재정씨가 어머니 박왕자씨의 영정을 붙잡고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고 박왕자씨의 발인식이 열린 지난 2008년 7월 15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서 아들 방재정씨가 어머니 박왕자씨의 영정을 붙잡고 흐느끼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이씨의 사망은 12년 만에 북한군에 의한 우리 국민 사망 사례가 된 가운데 남북 간 긴장감도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2008년 7월 11일 북한 금강산으로 관광을 간 민간인 박왕자씨는 북한군의 초병 총격으로 사망했다. 당시 박씨는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북한군 해안초소 초병이 등 뒤에서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평범한 주부였던 박씨가 사망한 직후 우리 정부는 북한에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 신변 안전 보장의 ‘3대 선결 요건’을 제시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했다.

정부는 박씨 사망 다음날부터 금강산 관광을 중지시켰고,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은 중단된 상태다. 당시 이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정부의 ‘햇볕정책’은 사실상 사멸의 길에 접어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상황에서 이번 우리 국민의 사망사건이 발생해 북한에 대한 국민적 반발심은 커지고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며 “우리군은 북한의 이런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김정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