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친서를 교환한 사실을 공개한 가운데 정상 간 물밑 화해 움직임이 이번 사태에서 되레 청와대와 군 당국의 안일한 대응을 부추긴 것 아니냐는 논란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우리 측 군 당국의 설명대로라면 북한에 의해 사살된 후 소각된 이모(47)씨는 지난 22일 오후3시30분 북측에서 발견됐으며 이어 약 6시간 후 북한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
북한이 이날 내놓은 해명과 달리 우리 군의 첩보가 정확하다면 이씨가 북측에서 발견된 후 군 당국과 청와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최근 남북 정상 간 물밑 교류에 따라 안이한 인식이 커진 데 따른 것일 수 있다. 군 당국도 앞서 이씨를 구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이유와 관련해 “북한군이 설마 그럴 줄은 몰랐다”고 해명했는데 ‘남북 친서’ 교환 속에 청와대 안보실도 상황 판단을 냉철하게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북한이 우리 측에 전한 통지문을 발표하며 “최근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친서를 주고받은 사실이 있다. 친서에는 코로나 사태의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면서 남북관계 복원에 대한 기대가 담겼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에 앞서 이번 사건에 유감을 표하며 ‘최근에 적게나마 쌓아온 북남 사이 신뢰와 존중의 관계’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외교가의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까지 언급한 것은 이 같은 남북 정상 간의 물밑 움직임이 있었기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에서 오판의 빌미가 됐을 수 있다. 실종된 이씨가 북측에서 발견된 시간은 22일 오후3시30분이며 문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서면 보고가 이뤄진 것은 당일 오후6시36분이다. 이어 약 3시간 후인 오후9시40분 북한군이 이씨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군 당국은 앞서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씨가 북측에서 발견됐다는 서면 보고를 받은 후에도 ‘구출’ 또는 ‘북과 접촉하라’는 지시를 전혀 내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정치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가장 큰 것은 대통령이 서면 보고를 받고도 구출 지시를 안 했다는 것”이라며 청와대와 국방부의 안이한 인식을 지적했다. 하 의원은 “제일 중요한 것은 살릴 수 없었냐는 것이다. 저는 살릴 수 있었다고 본다”면서 “왜냐하면 발견하고 (피살까지) 6시간 걸렸다. 북한 당국도 망설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강력히 신호를 보냈으면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아무리 남북이 친서를 교환하는 등 화해 분위기가 있었다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침투에 매우 과민하게 반응하는 북한의 내부 사정을 누구보다 청와대와 군 당국이 꿰뚫고 있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하 의원은 “북중 국경에서 중국인지는 모르겠는데 무단침입자를 사살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럼 훨씬 안 좋은 남북관계는 더 할 거라고 생각을 해야 하지 않나”라며 “안보라는 것은 최악의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행동 조치를 짜는 건데 거기서 군이 오판을 한 것이다. 치명적 실수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코로나19로 인해 입경하는 사람에 대해 강경 대응한다는 것은 이미 주한미군을 통해서도 확인된 주지의 사실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10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행사에서 “북한이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이유로 북중 국경에 특수부대를 배치해 사살 명령을 내리고 있다”고 공개 언급하기도 했다.
이씨가 사살됐다는 첩보가 문 대통령에게 보고되기까지 10시간이나 걸린 것도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씨가 사살 후 소각됐다’는 첩보가 청와대에 전달된 것은 22일 오후10시30분. 이후 2시간 반 후인 23일 새벽1시 청와대에서 긴급관계장관회의가 열리고 23일 오전8시30분 이 사실이 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된다. 우리 민간인이 북한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이 사실이 대통령에게 보고되기까지 무려 10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첩보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는 최초의 안이한 인식은 첩보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데 장애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 역시 사살 첩보를 보고받은 후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면서도 “북에도 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야당 정보위 관계자는 “10시간에 걸쳐 확인된 첩보를 ‘북에 확인하라’고 재차 지시한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이 사태를 ‘믿기 힘들다’는 인식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김혜린·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