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600만년 전 중생대 말기 멕시코 유카탄반도 인근 바다. 갑자기 지름 10㎞를 훌쩍 넘는 소행성이 떨어져 막대한 온실가스 등이 대기로 뿜어져 나와 태양을 가리고 지진과 화산 폭발, 쓰나미가 발생한다. 소행성이 대기권에서 마찰을 일으킬 때 초고압 충격파와 폭풍을 낳은 뒤였다. 당시 최상위 포식자였던 공룡을 비롯해 지구 생명체 75%가량을 몰살시킨 대멸종은 이렇게 시작됐다. 현지에 지름 150㎞가 훨씬 넘는 충돌구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때의 소행성 충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45억~46억년의 지구사에서 최근 5억년간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공룡이 사라진 게 마지막이다. 2억3,300만년 전 대멸종에 버금가는 멸종이 있었다는 논문이 최근 나오는 등 크고 작은 지구의 멸종은 20여차례로 추산된다.
문제는 오늘날 ‘제6의 대멸종’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는데도 인류는 둔감하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과거 대멸종은 빙하기나 소행성 충돌, 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에 의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인류가 자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 인류는 서서히 배고픔에서 벗어나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혹독하다.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지구촌 곳곳의 기후변화 위기가 단적인 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형 산불, 가뭄·폭우 등 기상이변, 물 분쟁과 식량 부족 사태가 초래되고 북극 해빙(解氷)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많은 이가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플라스틱 등 화학물질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미세플라스틱의 역습에 시달리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같은 인수(人獸)공통 감염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는 물론 약 870만종의 안전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멸종을 멈추려는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당장 눈앞의 생존과 경제개발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약 200개 국가가 지난 2015년 파리에서 기후변화협약을 맺고 온실가스의 단계적 감축에 합의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되레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해 ‘기후위기의 악동’으로 꼽힌다. 이는 곧 최근 최악의 서부 산불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기후위기에 둔감하기는 석탄 수출 1위인 호주도 빼놓을 수 없는데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우리나라 면적 이상이 불타는 참화를 겪었다. 우리나라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7위에 달할 정도이고 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기후변화에 인간의 탐욕까지 겹쳐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이나 인도네시아 등 열대우림에서도 대형 산불이 갈수록 악화돼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한다.
현재의 탄소배출량을 과감히 감축하지 않는다면 오는 2040년에 기온 상승폭이 1850~1900년에 비해 1.5도나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1.5도는 인류의 파멸을 불러오는 재앙을 막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거론되는 수치다. 이미 지구는 산업혁명기보다 1도 이상 상승했다. 현재 10년마다 대략 0.2도씩 상승 중인데 우리나라 등 유라시아를 비롯한 북반구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북극의 경우 2010~2019년 온도가 지난 1951~1978년보다 무려 4도나 폭등했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사태로 거리에 자가용이 넘쳐나고 플라스틱 사용량도 급증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래서는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지 않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인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해 9월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우린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는데 오로지 돈과 동화 같은 경제성장 얘기만 하고 있다”며 각국 지도자에게 일갈했지만 변한 게 없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의 얘기처럼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새 출발하는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이 필요한 때다.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