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단독]'더 내도 덜 받는' 이상한 실업급여, 정부 11개월째 외면

하한 최저임금-상한은 시행령 적용

보험료 더 내도 수령액 18만원 差

산출 구조 달라 불공정 심화에도

올 고용보험委 회의서 논의 안해

0515A01 구직급여 상·하한액 추이



# 500만원대 월급을 받는 직장인 김모씨는 월 4만원대의 고용보험료를 납부해왔다. 그가 해고될 경우 받는 실업급여(구직급여)는 현행 상한선인 198만원을 넘지 못한다. 반면 그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은 고용보험료가 1만4,000원대에 불과하지만 퇴직 시 180만원대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노사정이 이처럼 ‘고용보험료를 덜 내고도 구직급여를 더 받고, 더 내면 덜 받는’ 역차별 체계를 올해 상반기 중 정리하자고 지난해 11월 합의했지만 이후 관련 논의는 올스톱된 상태다.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 제도를 개선해야 할 정부는 11개월째 손을 놓고 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4일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2019년도 제6차 고용보험위원회 개최 결과(지난해 11월 개최)’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위원들은 2020년 상반기 안으로 구직급여 결정방식 제도개선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올해 고용보험위 회의록에서는 관련 논의가 전무했다.

고용보험법은 구직급여의 상한액과 하한액을 설정하도록 했는데 구직급여의 하한액은 최저임금과 연동돼 지난 2017년 4만6,854원에서 2019년 6만120원으로 올랐다. 반면 구직급여의 상한 기준은 최저임금에 연동되지 않고 시행령으로 결정되는데 하한과의 격차는 여전히 미미해 현재 6만6,000원이다. 이에 대해 지난해 11월 고용보험위 회의에서 한 위원은 “현재의 상·하한액 결정에 있어 객관 타당한 기준이 없어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요구된다”고 지적했지만 제도개선은 기약 없이 표류 중이다.

‘덜 내고 더 받는’ 현행 구조가 해소되지 않으면 보험료를 적게 내는 저소득 근로자를 중심으로 제도를 악용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일하다가 고의로 퇴사해 실업급여로 생활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습관성 퇴사자로 인해 고용보험재정이 축날 수 있다.




보험료 덜 내도 180만원, 더 내도 최고 198만원 ‘형평성 논란’
최저임금에 급여 하한선 연동
상한은 덜 올려 더 낼수록 손해



# 서울 소재 콜센터에서 일하는 A(24)씨는 팀장 교체 후 ‘고의적 해고’를 위해 회사를 안 나가기 시작했다. ‘6개월 이상 적당히 일하다가 그만둬도 최소 4개월은 구직급여를 받으면 된다’는 계산이 있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A씨의 월급은 190만원인 초봉이 적용되지만 고용보험제도상 일정 소득 미만의 경우 일률적으로 최저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월급 뺨치는 수준인 월 180만원을 구직급여로 받을 수 있다. A씨가 낸 고용보험료는 월 1만5,200원 수준이었다. 그의 사례를 들은 장기 근속자 B씨는 자신도 퇴사 시 얼마의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계산해 보았다. 그는 월 450만원 소득으로 산정한 보험료 부담액이 A씨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월 3만6,000원인데도 정작 받을 수 있는 구직급여는 198만원에 그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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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급여에 상·하한 기준을 둔 것은 사회보험의 성격상 소득재분배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구직급여의 하한액이 최저임금과 연동된 탓에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폭 인상돼 정규직 근로자를 중심으로 B씨처럼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고용보험료를 많이 낼수록 상대적으로 역차별받는다’는 주장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구직급여와 고용유지지원금의 재원이 되는 고용보험기금의 고갈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다 특수근로종사자(특고)의 고용보험 당연 적용 등으로 ‘덜 내고 더 받는’ 구조가 굳어질 것으로 보여 제도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직급여는 평균임금의 60%로 산출된다. 다만 하한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최저 구직급여 일액’이라는 최소 금액이 지급된다. 이 같은 하한선을 올해 기준으로 환산하면 월 300만6,000원 이하 소득자는 그만큼 보험료 부담이 적어도 무조건 최저기준인 6만120원의 일일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한 달치(30일 기준)로 환산하면 월 180만3,600원씩 지급되는 것이다. 이 같은 ‘최저 구직급여 일액’은 최저임금의 90%와 연동되도록 설계됐다. 따라서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크게 올렸던 2018~2019년 최저 구직급여 일액도 덩달아 큰 폭으로 인상됐다. 2017년 4만4,584원이었던 최저 기준은 2018년 5만4,216원, 2019년 6만120원으로 올랐다. 지난해 10월 구직급여가 개편되면서 최저 구직급여 기준을 최저임금의 80%로 내렸지만 2019년 기준보다 높아질 때까지는 6만120원을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률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결정된 올해와 내년 모두 6만120원을 기준으로 산출된다.

반면 구직급여의 상한액은 지나치게 낮아 ‘더 내는 사람이 덜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평균임금의 60%로 계산한 금액이 일일 기준 6만6,000원을 넘기더라도 당사자가 받을 수 있는 구직급여는 일일 6만6,000원 상한으로 제한된다. 월간으로 역산하면 월 330만원 이상 소득자는 아무리 고용보험료를 많이 내더라도 198만원 이상의 구직급여를 받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상한 기준은 최저임금에 연동하지 않고 시행령으로 정한다. 그러다 보니 최저임금에 연동된 하한 기준에 비해 인상이 더딜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상한과 하한의 소득 기준이 약 30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고용보험료를 덜 내도 구직급여를 더 받고, 보험료를 더 내도 급여를 덜 받는’ 모순적인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내년 특고 종사자 등도 적용땐
재정건전성 문제까지 부상할듯
성장률·물가 고려한 새 산식 시급


구직급여의 상·하한액 기준이 불합리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노사정 합의 기구인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지난해 내내 나왔던 문제였고 지난해 11월 회의에서는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4일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2019년도 제6차 고용보험위원회 개최 결과(지난해 11월 개최)’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위원들은 2020년 상반기 안으로 구직급여 결정방식 제도개선을 논의하고 조정도 함께 검토하기로 결정하며 현재의 상·하한액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특히 한 위원은 고용보험료 부과에 있어 상한이 없는데 급여는 상한액을 두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또 “하한액으로 임금보다 더 구직급여를 받는 것도 문제이므로 모두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2조877억원 적자를 본 고용보험기금의 재정건전성 우려도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높였다. 이날 회의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최저 구직급여액 기준에서 최저임금 연동을 배제하는 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상·하한액을 모두 올리자는 안을 제출해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이후 논의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이슈가 많고 특고 당연 가입까지 논의해야 해 상·하한액 논의는 뒤로 밀린 것”이라며 “올해 고민은 기금의 재정건전성이지만 하나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속사정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고용부는 내년도 예산에 월 소득 220만원 이하 특고 종사자와 예술인에게 고용보험료의 80%를 지원하는 예산 691억원을 편성했다. 지원 대상은 특고 43만명, 예술인 3만5,000명으로 결국 이들은 전부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게 되는 셈이다. 임 의원은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플랫폼 종사자까지 들어오면 ‘덜 내고 더 받는’ 구조가 고착돼 가뜩이나 고갈 우려가 도는 고용보험기금이 더 빨리 고갈될 수 있다”며 “고용보험 확대 정책과 함께 상·하한액 기준 설정 등의 정책적 보완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더 큰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임금인상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산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종=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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