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 그게 바로 음악의 역할이죠.”
‘건반 위의 구도자(求道者)’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슈만과 함께 돌아왔다. 지난달 17일 도이체그라모폰(DG)을 통해 슈만 음반 신보를 발매한 그가 오는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의 ‘백건우와 슈만’ 공연을 시작으로 두 달에 걸쳐 전국 투어에 나선다. 낭만 음악의 대가 슈만, 순수의 열정과 고통의 광기가 공존하는 그의 세계가 구도자의 손을 타고 되살아난다.
“나에게도 이번 앨범은 슈만의 재발견이었습니다.” 백건우는 6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작업을 하면서 슈만이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심정으로 정신병원으로 걸어 들어갔는지 지금은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앓던 슈만은 라인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얼마 후 생을 마감했다.
이번 앨범은 음악가 백건우에게 ‘한고비를 넘는 작업’이었다. “젊을 때는 슈만이라는 작곡가가 불편했어요. 그때는 이유를 몰랐는데, 그만큼 슈만의 세계가 복잡했던 거죠.” 그 고비를 넘겨야겠기에 다시 들여다본 슈만의 작품에서 그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특별히 표현해보고 싶은 세계’를 발견했다. 새 앨범의 녹음은 그렇게 시작됐다.
슈만과 그 시대상, 주변 인물들을 연구하고 음악을 파고들면서 슈만의 천재성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백건우는 “마지막 작품인 유령변주곡은 음 하나하나가 살아 있고 의미도 있다”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 음을 제어할 수도, 그런 곡을 아예 쓸 수도 없다”고 감탄했다. 그러면서 “나도 이번 기회를 통해 슈만을 재발견한 셈”이라고 밝혔다. 치열한 탐구와 작곡가에 대한 이해가 반영됐기 때문일까. 음반 프로듀싱을 맡은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은 녹음 후 스튜디오에서 한동안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이날 통영에서 화상인터뷰에 참여한 최 감독은 “백건우의 연주는 슈만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감동은 9일 열리는 ‘백건우와 슈만’ 공연에서 만끽할 수 있다. 백건우는 슈만의 첫 작품 아베크변주곡으로 시작해 1854년 작곡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유령변주곡으로 마무리되는 공연에서 슈만의 굴곡진 삶과 함께 요동쳤던 그의 섬세한 감정선을 손끝으로 되짚어볼 예정이다. 서울 공연을 마친 뒤 11월까지는 전국 투어에 나선다. 하나하나 귀하고 소중한 관객과의 만남이다. 백건우는 지난 2월 경기필하모닉 협연, 6월 독일 본베토벤오케스트라 내한 협연이 예정돼 있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어느 때보다 연주와 음악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는 그는 음악의 힘을 재차 강조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음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