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경미 감독 "자유로웠던 '보건교사 안은영', 인생의 기회였죠"

‘보건교사 안은영’의 세계는 이상하면서도 특별하다. 이경미 감독은 소설 속 이런 안은영의 세계를 기괴스럽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외로운 싸움을 하는 안은영의 기특한 성장에 주목했다. 때로는 자신을 투영하면서 안은영의 모습을 그려내며 공감성을 높였다.

정세랑 작가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안은영(정유미)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면서 한문 교사 홍인표(남주혁)과 함께 이를 해결해나가는 판타지. 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의 이 감독은 정 작가와 함께 각본을 쓰고 안은영의 세계를 영상화했다.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안은영의 성장 드라마였어요. 그게 캐치될 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지 않고 싶은 사람이 친구들의 사건을 겪으면서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성장 드라마요. 내가 지금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의 괴리감이 크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나도 그랬기 때문에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감독이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인 안은영의 성장 드라마는 소설 원작에는 없는 부분이다. 이 감독은 시즌1을 앞으로 ‘보건교사 안은영’을 히어로물로 진화시키기 위한 프리퀄로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 속 에피소드를 그런 성장 중심 서사들로 엮기 시작했고, 점차 자신 또한 안은영에게 동화됐다.

“이 작품을 준비하던 당시의 나의 상태와 안은영이 비슷했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모든 팀이 꾸려지고, 캐스팅도 다 된 상태에서 한 달여 남기고 중도 하차를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슬픈 일을 겪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떠나려고 결심했을 때 ‘그래도 이 작품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고 싶다’가 아닌 ‘해야 된다’였어요. 책임감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대의를 위해 책임져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안은영과 이어지게 된 것 같아요.”

이 감독에게는 ‘보건교사 안은영’이 신선한 경험이고 도전이었다. 항상 자신의 작품의 각본을 직접 썼던 이 감독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연출하는 것은 처음이다. 정 작가가 만들어 놓은 안은영이라는 세계를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색깔을 넣어야 하는 각색 작업은 새로웠다.

“정세랑 작가님과 둘이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각본을 쓰지는 않았어요. 정 작가님이 4부까지 쓴 각본과 원작 소설을 같이 받았고, 제가 각본과 소설을 읽고 살리고 싶은 부분들을 제안했어요. 소설은 에피소드 별로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걸 안은영의 성장 드라마로 엮으면서 히어로물의 프리퀄 개념으로 가보자 라는 콘셉트는 제가 기획하게 됐죠. 소설은 명랑하고 밝고 따뜻하지만 그 안에 죽음과 소멸에 대한 것이 깔려있기 때문에, 드라마 안에 그런 저의 해석을 넣고 싶었어요. 그 부분에 대한 저의 의견을 먼저 제안을 드렸죠. 제작자와 작가님의 좋다는 의견을 듣고, 제가 소설을 가지고 다시 구조 작업을 했어요.”

“다행히도 작가님이 많이 열어 주셨고 최소한 작가님이 보시기에 이것만큼은 절대 안 되는 것만 전해 주시면 반영했어요. 예를 들면 안은영이 학생들을 함부로 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어요. 또 각본에 목이 긴 여자 크리처를 썼는데 왜색이 짙어 보여 위험하다고 하셔서 삭제하기도 했어요.”



이때까지 봤던 어떤 히어로물보다도 ‘보건교사 안은영’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표현의 자유로움 때문일 것이다. 확연하게 ‘어떤 장르다’라고 정의 내리기도 어렵고, 간혹 세세한 설명 없는 전개가 불친절하다고 느끼는 시청자들도 있다. 여기에는 이 감독의 숨은 의도가 있다. 그는 여느 드라마들과 다르게 마치 캐릭터가 게임을 하는 듯한 연출을 했다고 설명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보건교사 안은영’은 명랑 판타지 오컬트 성장 드라마예요. 사람들에게 낯선 구조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뻔뻔한 만화같이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판타지고, 만화적인 요소들이 원작에서부터 있었으니까 원작을 등에 업고 시리즈도 만화같이 팍팍 튀어보자는 생각이었죠. 원작 소설들의 에피소드를 안은영의 성장 드라마라는 줄기로 다시 짜서 엮으면서, 기존의 드라마처럼 과정이나 캐릭터들의 마음들을 설명하고 친절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에피소드 별로 게임을 할 때 어떤 단계를 클리어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듯이, 한 에피소드당 젤리 크리처를 만나고 처치하면서 다음 단계로 미션을 넘어가보자 라고 했죠. 그 동시에 성장 드라마를 가져가야 하니 어떤 에피소드는 굉장히 미쳐 있고, 굉장히 슬퍼요. 에피소드별로 성격이 다른 거죠.”



“만화적인 요소가 호불호가 있는 건 이야기가 갖고 있는 소재 때문이 아니라, 영상화되면서 생긴 부분인 것 같아요. 왜냐면 소설은 시리즈물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럽거든요. 기획 단계에서 이에 대한 고민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왜냐면 이것은 판타지물이기 때문에 조금 더 자유롭게 해보고 싶기도 했고, 넷플릭스 플랫폼이기 때문에 기존의 극장 상영물처럼 여러 가지 검열의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런 기회가 인생에 흔치 않을 텐데 ‘그냥 나는 모르겠다. 한번 누려 보겠다’라는 심경으로 해봤어요. 늘 제 작품은 호불호가 나뉘었기 때문에 ‘호불호 나뉠 텐데 어떡하지’라는 고민은 안 했어요. 자신의 운명을 안고 가는 은영이와 같은 저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주어진 기회를 즐기고 싶었어요.”(웃음)

이 감독과 정 작가가 만나 더 다채로워진 안은영의 세계는 배우들과 만나 더 극대화됐다. 정 작가와 소설 팬들의 1순위 캐스팅이었던 정유미가 안은영 역을 맡으면서 캐릭터에 생기가 생겼고, 남주혁이 안은영의 충전기 역할을 하는 홍인표를 연기하면서 색다른 그림이 그려졌다. 안정적인 연기력의 신인 배우들까지 시너지를 더했다.

“이건 정유미가 아니면 안은영은 나올 수 없구나 싶었어요.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본 후에도 안은영의 광기 어린 반짝반짝한 얼굴을 기억하고 떠올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정유미 배우 자체가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사람이거든요. 사실 홍인표 역은 소설을 읽었을 때 중년의 나이가 있는 남자를 생각했어요. 근데 넷플릭스에서 혹시 남주혁은 어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남주혁 배우를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제의를 듣고 ‘왜 홍인표는 나이가 많아야 하지?’라고 발상의 전환을 했어요. 만나고 나서 더 좋아져서 같이 하게 됐어요.”

“학원물이 늘 그렇듯이 새로운 신인을 발굴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어요.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예를 들어 ‘이런 옴잡이 캐릭터라면 아주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캐스팅하죠.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외국인들이 봤을 때도 구별이 갈 정도로 한국이나 동양인들은 이렇게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생김새의 밸런스도 신경을 썼어요.”



또 하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보건교사 안은영’의 OST.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기이한 가사는 드라마의 이미지를 배가시킨다. 이 감독의 작품에 항상 함께 했던 장영규 음악감독이 이번에도 힘을 더했다. 이 감독은 장 감독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내며 음악으로 ‘보건교사 안은영’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장 감독님은 드라마 전개를 도와주기보다는 작품을 해석하고 음악을 만들어주는 분이에요. 음악이 단순하게 가는 게 아니라, 이 이야기가 갖고 있는 레이어(다양한 층)를 만들어 준다든지 그림으로만 봤을 때는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것들을 안에 깊숙하게 넣어주죠. 안은영이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칼을 들고 옥상에 등장하고 두꺼비 괴물을 무찌르면서 나오는 ‘보건교사다 잽싸게 도망가자’, ‘보건 교사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 같은 음악은 편집본을 보고 만들어 온 거예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만든 프리 비주얼에는 굉장히 웅장한 할리우드식 음악이 깔려 있는데, 이런 음악을 생각하는 것은 전 세계에 장영규 음악뿐일 거예요.”(웃음)

캐릭터부터 음악까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은 앞으로 시리즈로 이어진다. 시즌1 포문을 연 이 감독은 아직 시즌2에 대한 이야기는 나온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즌2를 위한 요소들을 많이 심어놨다고 전해 기대감을 높였다.

“시즌2는 아직 이야기도 없고, 누가 할지도 결정된 것이 없어요. 대신 작품이 시즌2로 갈 수 있게 시즌1에 밑밥을 깔아놓은 거죠. 누가 하든 너무 막연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 노력을 했어요. 시즌2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