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올 들어 한진그룹과 한국테크놀로지그룹(000240) 등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대기업집단 지주사의 보유 지분을 축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8년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오너리스크가 있는 기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왔으나 이후 중립성 논란 등이 불거지자 영향력을 점차 줄이기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7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9월 11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식 485만94주를 매각해 보유 지분 비율을 기존 6.24%에서 5.21%로 낮췄다. 국민연금은 이에 앞서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이 지주사 지분을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 양도한 직후인 지난 6월30일에도 지분 1.2% 포인트 가량을 장내 처분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이번 지분 매각 사유에 대해 단순 처분이라고 공시했다. 최근 경영권 분쟁 등의 영향으로 이 회사 주가가 치솟자 차익 실현에 나섰다는 의미다. 현재 국민연금의 이 회사 주식 보유 목적은 정관 변경 등을 제안할 수 있는 ‘경영참여’보다 한 단계 낮은 ‘일반투자’여서 매각에 특별한 제한이 걸려있지 않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등 대기업 경영권 분쟁에 당분간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180640) 지분을 지속적으로 처분해 현재 1% 미만의 주식만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왔던 것과 달리 내년 정기주총에서는 영향력이 상당히 낮아진 셈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등을 의논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지난 6월 내부적으로 한진칼 주식 보유목적을 경영참여에서 일반투자로 낮추는 방안까지 검토하기도 했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최근 삼광글라스의 분할 및 합병방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등 일반 주주 보호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오너 일가 경영권 분쟁은 어느 한쪽의 편을 들 명분이 없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도 지속적으로 매도해 지분비율을 5% 미만으로 떨어트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국민연금은 지분 보유 현황을 일일이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