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법사위원회 산하 반독점소위가 6일(현지시간) 공개한 ‘디지털 시장의 경쟁조사’ 보고서는 449쪽에 달한다. 소위가 지난 15개월간 130만건의 문서와 300여건의 인터뷰, 7월 청문회 등을 모아 내놓은 것이다. 그만큼 내용이 방대하고 자세하다.
소위는 아마존과 구글·페이스북·애플의 독점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보고서에서 ‘독점(monopoly)’이라는 단어만 120번 넘게 등장한다.
실제 아마존의 경우 온라인 소매판매 점유율이 40%가 아닌 최소 50%가 넘는다는 것이 소위의 판단이다. 보고서는 “아마존의 미국 온라인 소매판매 점유율이 40%라고 하는데 이는 과소평가돼 있다”며 “더 신뢰할 수 있는 추정치는 최소 50% 이상”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1위 업체의 점유율이 50% 이상이면 독점으로 본다.
아마존은 온라인 장터인 아마존닷컴을 운영하면서 사이트 내에서 물건도 팔고 있다. 사이트 이용 업체들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들과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아마존의 공고한 지위가 부분적으로는 경쟁 사이트인 다이어퍼스닷컴과 자포스를 인수한 결과라고도 했다. 선제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의 불씨를 없애버린 것이다.
페이스북도 아마존과 비슷한 전략을 썼다. 페이스북에 위협적인 인스타그램을 사들이는 ‘킬러 합병(killer acquisitions)’을 했다는 게 소위의 분석이다. 보고서는 인스타그램 전직 고위직원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서로 경쟁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마련해 페이스북 경영진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구글 역시 일반 검색 및 검색광고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유료 광고와 일반 검색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구글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도록 강요해 시장지배력을 높였다는 것이다. 구글이 광범위한 이용자 정보를 기반으로 여러 서비스를 얹으면서 독점적 지위를 더 강화하고 있다는 게 소위의 생각이다.
애플도 비슷하다. 당장 애플은 앱스토어에서 독과점을 형성하고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를 통해 소비자와 앱 개발자 모두가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보고서는 애플이 스마트폰 운영체제(OS)와 앱스토어에 대한 통제권을 통해 경쟁상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동시에 자사 제품을 쓰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애플은 앱 결제액의 30%를 수수료로 일방적으로 떼간다.
하원 소위 보고서가 정보기술(IT) ‘빅4’의 행태를 낱낱이 공개하면서 독점금지법 개정 논의는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보고서의 권고는 수십년간 관련법의 정비를 위한 가장 극적인 제안을 제시한다”며 “의회에서 승인된다면 이들 기업의 분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중 사업분할은 태풍의 눈이다. 이와 관련해 데이비드 시실리니 소위 위원장은 상업과 투자은행을 분리한 1930년대의 법을 언급하기도 했다. NYT는 “정부가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사를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후 가장 큰 사건”이라며 “이번 보고서는 실리콘밸리를 바꾸기 위한 로드맵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민주당 내에서 IT기업의 독점과 관련한 문제 인식이 많고 지금까지 거대 IT기업 분할을 주장했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재무부 장관이나 연방통신위원회(FCC) 수장으로도 거론되는 만큼 대선 후인 내년에 본격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 하원 보고서를 계기로 법무부와 FCC의 반독점 조사가 속도를 낼 가능성도 높다. 투자은행(IB) 코언의 폴 갤런트 애널리스트는 “이 보고서가 독점 금지와 기술 분야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내년에 입법동력이 생길 것이며 다른 조사와 소송을 자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업분할을 포함해 논란이 되는 부분이 많아 실제 입법과정에서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현재 공화당은 보고서 내용의 상당수가 급진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만 해도 지난달 말 TV 토론에서 “급진좌파의 정책을 받아들이겠느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에 “바이든의 정책을 만들 것”이라며 취사선택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