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그룹 전문경영인 A씨는 이번 정부 들어 한 국책연구기관장을 만나 적잖이 불쾌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정부와 국책기관, 기업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재벌 3세들은 선대 회장이 일궈놓은 회사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과감한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며 힐난했다고 한다. 대기업이 방어 경영을 하고 있고 그 배경에 재벌 3세가 있다며 나무란 것이다.
투자 부진의 원인이 재벌 3세에게 있다고 보는 싱크탱크 수장의 인식은 현 정권의 ‘남 탓’ DNA와 일치한다. 근본 원인은 척박하리만큼 비우호적인 경영 환경에 있다고 보는 게 더 맞는다.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를 정치화한 경제민주화 구호 아래 추진되는 반(反)시장 정책은 경제계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재벌 3세가 아니라 제아무리 재벌 할아버지가 온다 한들 지금 같은 환경에서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을까.
기업 옥죄기의 끝판왕은 상법 개정안에 담긴 감사위원 분리선출 ‘3%룰’이다. 대주주 의결권이 3%로 묶일 경우 투기자본은 마음만 먹으면 크지 않은 돈으로 주요 기업 이사회에 자기 사람을 심을 수 있게 된다. ‘대주주를 배제해 선출한 인물은 투명하다’는 맹신이 자칫 우리 기업을 투기자본 앞에 발가벗길 수 있어 위험하다. 재계는 “경영권 방어수단을 주지 못할망정 있는 의결권도 행사를 못 하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진다. 이들은 SK를 공격했던 소버린, 삼성·현대차와 힘겨루기를 했던 엘리엇의 행태를 목도했던 터라 경영권 위협 공포가 더 크다.
그런 면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외국 헤지펀드가 한국 기업을 노리도록 틈을 열어주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빈말인지 아닌지는 그가 논의 과정에서 얼마나 ‘현명하게’ 재계 의견을 입법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지를 보면 알게 될 일이다. 국민은 지난 총선 때 이 대표가 강남 3구를 겨냥해 “1주택자 종부세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가 압승 후 입을 싹 씻었던 일을 기억한다. 대권 주자의 립서비스 사례가 추가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