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가 ‘깜짝 실적’을 발표한 8일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이 부회장이 해외 출장에 나선 것은 지난 5월18일 중국 산시성 시안 반도체공장을 방문한 뒤 5개월 만이다. 그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중단했던 글로벌 현장 경영을 재개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김포공항을 통해 네덜란드로 출국했으며 네덜란드를 거쳐 스위스로 이동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5개월 만의 해외 출장지로 네덜란드를 택한 것은 ‘반도체 비전 2030’ 달성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오는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글로벌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 여부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 달렸고 네덜란드에는 파운드리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독점 공급하는 장비업체 ASML이 있다. EUV 장비는 대당 가격이 2,000억원에 이른다.
EUV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가 ASML밖에 없다 보니 글로벌 파운드리 1·2위 업체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 간 장비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전 세계에서 ASML의 EUV 장비를 활용해 7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1m) 이하 반도체 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에 이어 내년부터 메모리반도체인 D램 생산에도 EUV 공정을 전면 적용할 예정이어서 EUV 장비 추가 확보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말까지 10대 이상의 EUV 장비를 확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올해 화성 EUV 전용라인 가동에 이어 내년 평택 파운드리 라인을 추가로 가동하고 차세대 D램에도 EUV 공정을 적용해야 해 EUV 장비를 대거 확보해야 한다”며 “이 부회장이 ASML 최고경영진과 장비의 안정적 공급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지원을 확대하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있는 만큼 반도체 투자를 늘려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스위스에서는 반도체 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사업 협력을 논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ST마이크로는 미국 테슬라, 독일 BMW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시스템반도체 ‘엑시노스 오토’를 생산한다.
유럽에는 메르세데스벤츠·BMW·폭스바겐·푸조·르노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몰려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이 이들 업체와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을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일주일가량 유럽에 머문 뒤 귀국할 것으로 예상했다. 귀국 이후 이 부회장이 글로벌 현장경영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부회장의 재판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어서다. 이달 22일과 26일 각각 경영권 불법 승계 문제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공판준비기일이 열리고 다음달 본재판이 시작되면 이 부회장이 직접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개의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면 재판 준비 및 법정 출석을 고려할 때 이 부회장이 해외출장을 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