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천당과 지옥 오가는 중고차...더이상 '운'에 맡기지마라 [토요워치]

판매자·소비자 정보비대칭 구조에

중고차 매매 사기 당할 가능성 커

진입장벽 낮춰 대기업 참여 허용땐

안전한 거래·차량관리 등에 유리

소규모 매매업체 6,000곳은 '반발'

"중고차, 생계형 적합업종 부적절"

동반성장위, 중기부에 의견서 보내

# 서울에 사는 A씨는 최근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고향인 경남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가 “차가 필요한데, 다른 곳에서는 2,000만원이 넘는 차가 480만원에 나온 데가 있어 인천으로 올라오겠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가 알아봐드리겠다”며 아버지를 막았지만 A씨는 허위매물을 이용한 중고차 사기·강매 사례를 많이 봐온 터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깜이 중고차 시장’=중고차 시장은 대표적 ‘레몬마켓(판매자와 구매자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불량품만 유통되는 시장)’이다. 운이 좋으면 양심적인 매매상을 만나 신차 못지않은 중고차를 싸게 구매할 수 있다. 소득은 적지만 차가 꼭 필요한 소비자에게 중고차는 매력적이다. 실제 유튜브 등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 중고차를 고를 수 있는지를 소개하는 영상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지갑이 얇은 소비자도 프리미엄 브랜드 차량을 구입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중고차 시장이다. 영세한 상인들이 상용차를 마련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사회초년생 B씨는 고가의 프리미엄 차량을 중고차 매매상에게 매입해 마치 신차를 뽑은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며 운전하고 다닌다.


하지만 레몬마켓이라는 시장의 구조상 언제나 ‘사기’의 위험성은 존재한다. ‘차알못’인 소비자들이 좋은 중고차를 알아보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레몬마켓 같은 구조적으로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시장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개입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직접적인 규제보다 진입장벽을 낮춰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양질의 중고차 매매가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40대인 김모씨는 대형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SM3 최상위 모델을 구매했지만 점검 과정에서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판매원이 하위 모델에 최상위 모델 엠블럼이 달린 트렁크를 바꿔 달고 판 것이다. 김씨는 항의하러 매매단지를 찾았으나 이 판매원은 해당 단지 소속이 아니었고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런 사기행위를 알아낼 방도가 없다.

문제는 모든 시장이 그렇듯 진입장벽을 낮추면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중고차 시장의 경우 기존 중고차 매매상과 새로 진입할 대기업 간의 갈등이 그 중심에 있다.




◇브랜드 관리 위해 필요 VS 소상공인 다 망할 것=대기업인 완성차 업체들은 중고차 시장 진입을 요구하는 이유로 브랜드 관리를 꼽는다. ‘판매한 차량의 사후관리→안전하게 정비된 중고차 판매→안정적인 중고가로 인한 신차 가격·브랜드 가치 상승’을 내세운다. 자동차 전체 생애주기와 산업 생태계 관리 차원에서 중고차 시장 진입이 필요하며 이는 소비자에게도 이익이라는 논리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장 나쁜 규제가 시장진입 자체를 막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중고차 거래는 지인들 사이에서만 하게 되더라”면서 “대기업이 진입해 중고차의 안전성을 높이면 시장이 커지고, 취급 조건을 둬 영역을 분할하면 소상공인과의 상생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대도 만만치 않다. 대기업이 ‘공룡’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지난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의 진입이 원천 차단됐다. 현재는 일몰됐지만 소상공인 중심의 시장이 형성돼 이들이 대기업 진입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국내 중고차 시장은 약 6,000곳의 소규모 매매 업체가 주로 영업하는 형태다. 이강희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부장은 “대기업이 시장에 들어온다고 해서 극소수 사기집단이 없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며 “오히려 소상공인들만 망하게 될 게 뻔하다”고 말했다. 소수의 사기 치는 업체는 빠져나가고 피해는 대다수 선량한 소상공인이 입을 것이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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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은 대기업 진입 허용...소비자·동반위도 ‘찬성...중기부는?

미국과 유럽 등 자동차 선진국은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완성차 업체들이 ‘인증 중고차’ 형태로 정비된 차량을 소비자들에게 판매한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완성차 업체들이 신차뿐 아니라 중고차도 판매할 수 있다. 현대차의 경우 유럽에서 ‘현대 프로미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고차를 판매하며 안정성과 투명성을 보증하는 제도다.

가장 중요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연구원이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 1,000명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76.4%가 ‘국내 중고차 시장은 불투명·혼탁·낙후됐다’고 답했다. 부정적 인식의 주요 원인으로는 49.4%가 ‘차량 상태 불신’을 꼽았고 25.3%는 ‘허위·미끼 매물’을 지목했다. ‘낮은 가성비’는 11.1%, ‘판매자 불신’은 7.2%였다. 한마디로 “못 믿겠다”는 얘기다.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이 진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을 넘는 51.6%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부정적’이라는 답변(23.1%)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관련 피해는 결국 민사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개인들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라며 “차량은 다른 상품과 달리 판매가격도 높아 소비자의 삶에 큰 타격을 준다”고 말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쥐고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이 지난해 초 일몰됐지만 이를 대체하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제도가 도입돼 현재 중기부에서 중고차판매업 지정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지정되면 5년간 대기업은 해당 업종에 새로 진입할 수 없다.

중기부의 심의와 별개로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중고차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중기부에 전달했다. ‘산업경쟁력’과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 등이 지정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중기부가 기존 영세업자의 생존권도 일부 보장하면서 혼탁한 중고차 시장을 정화시키고 소비자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 고객과 신차 고객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게 차 업체들의 판단”이라며 “중고차 신뢰도 강화를 통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면 중고차 고객이 향후 신차 구매층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박한신·서종갑기자 hspark@sedaily.com

박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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