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장에 웬 빨래 건조대? 그뿐만이 아니다. 다리미, 헤어드라이어, 냄비, 마우스 같은 일상생활의 기물 모습이 진열돼 있다. 다만 그들은 방울 옷을 입는 등 나름대로 치장돼 뽐내고 있다. 생활도구를 활용한 작품들. ‘소리 나는 가물(家物)’, 바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양혜규 전시 ‘O2 & H2O’에서 만날 수 있다. 양혜규의 조형물은 으레 바퀴가 달려 있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고, 실제 전시장에서 움직이며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한다. 바퀴달린 조형물들. 바퀴는 이동과 속도를 상징한다. 인류문명 발달사에서 최고의 발명품은 바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바퀴의 상징성은 크다. 이동하는 사람들, 바로 유목민이다. 양혜규는 유목민의 DNA가 짙은 것 같다. 그는 현재 프랑크푸르트의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혹은 베니스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 정상급의 미술관이나 전시이다. 이 같은 곳에서 전시를 초대받은 작가, 바로 양혜규다. 현재 국제무대에서 가장 뜨겁게 활약하고 있는 한국 출신 작가로 양혜규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지구촌 곳곳에서 출품 요청을 받고 있다. 여타 미술가와의 차별상은 현지 특성에 맞는 작품을 제작한다는 점이다. 동일 작품의 단순 순회가 아니고 장소특정적 작품을 새롭게 제작한다. 긴장 없는 전시를 혐오하는 입장의 증거다.
나는 작가에게 질문했다. “어떻게 도처에서 찾는 국제적 작가가 되었는가.” 작가의 대답은 단순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우문현답. 다만 완벽주의자 같은 철저한 성격의 작가임을 주목하게 한다. ‘지금, 여기’를 중요시여기는 작가는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철저하게 정성을 쏟는다고 했다. 매사에 성실하다는 것. 순간순간을 열심히 산다는 것. 이런 성품이 오늘날 세계적 작가로 성장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는가 보다. 이지적인 작가 양혜규. 사용하는 재료는 블라인드 등 값싼 제품들이지만 작품 내용만큼은 매우 철학적이다. 이번 서울전을 계기로 양혜규는 평론 모음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모음 2001-2020’을 출판했다. 나는 추석 연휴를 이 두툼한 책에다 바쳤다. 다양한 필자들의 이 책은 현대미술의 한 갈래를 알려주는 훌륭한 안내서였다.
“양혜규는 예술이 인간과 비인간의 이행 지점을 표현한다고 보는 작가 세대에 속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주체다. 그것은 보편적 주체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으로서, 사물이나 생명체에 동등한 주체의 지위를 부여하고, 예술작품을 구성하는 형식적 네트워크에 함께 짜들어간 개별 요소에도 ‘인격성’을 인정해준다. 그러므로 오브제/객체라는 개념은 결국 폐기된다.”(니콜라 부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