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조정래 "글 쓰다 책상에 엎드려 죽는 것...변함 없는 소망"

■등단 50주년 기념 조정래 작가 간담

'태백산맥''아리랑''한강' 3대 대하소설

집필 후 처음 새로 읽어보고 개정판 내

"작가에겐 자신의 전작이 신작의 敵"

독자 105명 질문에 답한 산문집도 출간

"불교적 세계관 입각한 작품 구상

등단 55주년 때 선보일 수 있을 것"

집필 중인 조정래 작가./사진제공=해냄출판사집필 중인 조정래 작가./사진제공=해냄출판사



태백산맥, 아리랑 그리고 한강.

‘20세기 한국 근현대사 3부작’으로 불리는 조정래(77) 작가의 대하소설 3부작은 현재까지 모두 합해 1,550만 부가 팔린 한국 현대문학사의 역작이다. 한 장 한 장 써내려간 원고지가 5만 1,500매나 되고, 등장인물만 1,200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조 작가는 그를 오늘날 한국 문학계의 거목으로 자리하게 한 작품들을 수십 년 동안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기존 작품은 새 작품의 가장 큰 적(敵)’이라는 작가로서의 신념 때문이었다. 행여라도 앞선 작품의 영향을 받아 새 작품에 유사한 사건이나 인물이 등장해선 안된다는 창작자로서의 강한 경계감 때문이었다.

실제 그는 태백산맥의 주인공 염상진이 독자들의 머리 속에 강렬하게 각인됐다는 이유로, 이후 소설에서는 염씨 성을 가진 인물조차 등장시키지 않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이미 쓴 작품에 선을 그었다.

조정래 작가가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장소에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3부작의 개정판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제공=해냄출판사조정래 작가가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장소에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 3부작의 개정판을 살펴보고 있다./사진제공=해냄출판사


그랬던 그가 최근 1년여 동안 세 작품 32권을 처음으로 정독했다. 태백산맥의 경우 완간 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읽었다. 등단 5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작업을 해보자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은 후 글을 써온 반세기 세월에 의미를 부여할 만한 작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 ‘개정’을 다짐하며, 한 문장 한 문장 세심하게 읽었다. 사건이나 인물을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어휘부터 조사, 어미, 문장부호까지 하나하나 손봤다. 불필요한 수식어나 쉼표를 삭제하면서 독자 입장에서 읽기 쉽게 리듬감을 주기도 했다. 가뜩이나 스마트폰에 책이 밀리고 있는 시대, 소설 중에서도 가장 읽기 힘든 대하소설의 가독성을 더 높이기 위한 작업이었다.

조정래 작가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조정래 작가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조 작가는 12일 열린 등단 50주년 및 대하소설 개정판 출간 간담회에서 “게을러서가 아니라 (기존 작품을) 읽어서는 안 되는 예술 세계의 제약 때문에 30여 년 만에 책을 펼쳤던 것”이라며 “문장을 고치고 나니 ‘이젠 됐다’하고 안심이 됐다. 완벽함을 지향하는 작가의 노력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는 퇴고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번 더 못 박았다.


대신 그는 아직도 써야 할 작품들이 많다고 했다. 조 작가는 “삼십 대 때부터 소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글 쓰다 책상에 엎드려 죽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 없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쓰다가 죽는 것처럼 아름다운 작가의 삶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새 작품에 대한 계획도 모두 세워뒀다고 했다. 조 작가는 “앞으로 단편의 미학을 문학적으로 완성하는 일을 해보려 한다. 또 앞으로 장편 두 편 정도는 현실 문제를 떠나 인간 본질의 문제를 토대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실 문제에 이어 내세 영혼에 관한 글까지 써야만 작가 세계가 완성된다”며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소설을 쓸 예정인데,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쓰면 등단 55주년 정도 때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더해 그는 “박정희 시대를 싫어하지만 ‘초과 달성’이란 말을 유일하게 좋아한다”며 “지금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으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웃었다.

조정래 작가의 책상./사진제공=해냄출판사조정래 작가의 책상./사진제공=해냄출판사


조 작가는 대하소설 세 작품의 개정판을 내면서 독자들의 질문에 답한 산문집 ‘홀로 쓰고, 함께 살다’도 함께 펴냈다. 105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모은 책인데, 작가의 문학관, 역사관, 세계관이 모두 담겨 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독자의 질문에 “인생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면서 건너가는 징검다리”라고 답했고, ‘작가의 기본 요건’에 대해서는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갖추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런 맥락에서 반일종족주의 저자 이영훈이 태백산맥, 아리랑 등의 내용에 대해 허구라고 비판한 데 대해서 맞받아치기도 했다. 조 작가는 “이영훈은 신종 매국노다. 그의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태백산맥 중 500개가 넘는 내용에 대해 국가보호법 위반으로 고발 당했지만 11년 조사를 받은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래서 아리랑은 더 철저하게 자료를 조사해서 썼다”고 부연했다. 그는 반민특위 부활과 친일파 처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후배 작가들에게도 조언을 남겼다. 그는 “1인칭 소설만 쓰지 말고 조금 더 치열해지길 바란다”면서 “1인칭 소설에서는 ‘나’가 빠지는 순간 다른 등장인물은 백 명이든, 천 명이든 모두 피동적으로 변한다. 독자들이 실망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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