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美·中 ‘AI반도체 개발’ 총력 쏟는데... 韓투자는 '이제 시작'

정부, 10년간 1조 지원 밝혔지만

中 AI산업 투자 100분의1 불과

미국도 29조 달하는 보조금 준비중

포퓰리즘예산 줄여 재정투입 늘려야

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한국 점유율을 오는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고 혁신기업 수를 20개로 늘리기로 했다. AI 반도체가 자동차, 모바일, 사물인터넷(IoT) 등 각종 산업 융합의 ‘두뇌’ 기능을 하는 만큼 이를 집중 육성해 ‘제2 D램’ 신화를 재연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지난 1월 발표한 AI 반도체 투자 계획은 2029년까지 1조96억원에 불과하다. 중국이 AI 반도체를 포함한 AI 산업에 2030년까지 쏟아붓는 1조위안(약 170조원)의 170분의1에 불과하다. 미국도 반도체 국내 생산을 위해 250억달러(29조원)의 보조금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 초격차 전략을 위해 보다 공격적인 재정투입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포퓰리즘성 예산 확대를 멈추고 미래산업 경쟁력 확보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2일 경기도 성남시 시스템반도체 설계지원센터에서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AI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확정했다. 이번 전략은 정부가 1월 연구개발(R&D) 등을 포함한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육성 전략’을 확대한 것이다. 정부는 우선 2024년까지 연산 성능이 현재의 최대 10배인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개발하고 반도체 칩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와 연산 기능을 통합한 신개념 PIM 반도체 기술을 구현하는 등 초격차 기술 확보에 나선다. 또 ‘AI 대학원 설립’ 등 민관 공동 투자와 선도대학 육성으로 2030년까지 AI 고급인력 3,000명을 양성하고 연관 생태계 조성을 위해 AI 반도체 혁신기업을 20개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글로벌 신산업 ‘파고’에 맞서기 위한 추가 재정투입은 미정이다. 556조원으로 ‘초슈퍼 예산’을 짰지만 일회성·소모성 예산 비중이 늘어나며 정작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한 산업 경쟁력 확보 예산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제재에 독이 오른 중국은 조만간 내년 시작되는 14차 5개년계획에 향후 5년 동안 수백조원의 차세대 반도체 투자 계획을 담을 예정이다. AI와 5세대(5G) 네트워크 기술을 포함하면 중국의 예산 투입 규모는 1,7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국회가 AI 반도체 종합전략 예산을 심의 중으로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이 반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허출원 점유율 韓 10% 불과...美 43%에 한참 못미쳐

고급인력 대기업 선호에 중소 팹리스는 인력 수급 애로

시장 선점하려면 반도체분야에 공격적 재정 투입 필요

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한 것은 세계 1등 기술력을 자랑하는 메모리 반도체에 반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차세대 비(非)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와 자율주행차 기술개발 등 연구개발(R&D)을 확대하고 3,000여명의 전문 인력을 양성해 오는 2030년 세계 시장 점유율 2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러나 관건은 재정 투입 규모다.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면 민간의 공격적 투자가 뒤따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도체 글로벌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국가 보조금을 수십조원에서 많게는 수백조원까지 각각 반도체 분야에 쏟아부을 태세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정부도 반도체 분야에 공격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재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미래 투자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I 반도체 ‘초기 시장’ 선점하겠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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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AI 반도체가 초기 시장인 만큼 ‘선점’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맞는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핵심 부품이 AI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AI 반도체는 사람의 뇌처럼 기억·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다. 자율주행차나 사물인터넷(IoT), 스마트 기기 등에 적용되는 AI 기술이 구현되기 위한 핵심 부품이라 글로벌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30년 AI 반도체 시장은 1,179억달러 규모로 현재보다 17배 가까이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지배적인 강자가 없어 초기 시장 선점을 위한 각국의 기술개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높은 기술력과 고급 인력 확보가 관건이지만 한국의 관련 경쟁력은 선진국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다. 기술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특허출원 점유율을 보면 한국은 10.3%에 불과해 미국(43%), 중국(30.7%)에 한참 못 미친다. 인력 활용 측면에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고급 인력이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위주의 안정적인 대기업을 선호하는 탓에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중소 팹리스(반도체설계전문) 업체들의 대부분은 인력 수급에 애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설계교육센터 출신 석박사 취업자 현황(2018년 기준)을 보면 중소기업 취업자는 70명으로 대기업 취업자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반도체 1조, 자율주행차 1조 R&D지원

정부가 ‘AI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면서 기술개발과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이 때문이다. 우선 기술 부문을 보면 △서버·모바일 분야에 적용할 신경망처리장치(NPU) △미래 신소자 △미세공정·장비를 올해부터 개발하기로 했다. 뇌 기능을 모방하는 차세대 AI 반도체 뉴로모픽칩 제조 기술을 2029년까지 확보하겠다는 목표도 내걸었다.

이를 위해 민관이 국내에 구축한 데이터 인프라에 제품을 선제적으로 도입할 방침이다. 기술개발에 나선 기업이 초기 납품처를 찾지 못해 고사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으로 광주 AI클러스터 데이터센터와 네이버 제2데이터센터, SK텔레콤 데이터센터에 국산 제품을 우선 투입하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팹리스와 수요기업의 협력을 통해 AI 반도체 공동개발과 생산을 지원하는 ‘1사 1칩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와 자율주행차 등의 공동 기술개발에 2조원의 R&D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G2도 반도체 패권쟁탈에 사활걸어

반도체 업계는 정부가 보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야 하다고 주문한다. 반도체 글로벌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 앞다퉈 선제 투자에 나서는 마당에 예산 집행이 보수적인 수준에 그친다면 이번 전략은 ‘공허한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신시기 반도체·소프트산업 발전 대강’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15년 이상 운영해온 반도체 제조기업이 28㎚ 이하 고도화 공정을 적용할 경우 최대 10년간 법인세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65㎚ 이하 28㎚ 초과 반도체 공정을 적용하는 기업에는 5년간 법인세를 면제하고 이후 5년간 세율을 낮춰주기로 했다.

또 미국 연방의회는 반도체 국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신규로 총 250억달러(약 29조원) 규모의 보조금 투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의회는 인텔 등 자국 반도체 업계의 개발·생산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거액을 지원하는 내용의 초당파 상하 양원 일원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반도체 공장과 연구시설 등에 연방정부가 1건당 최대 30억달러의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에 뒤진 차세대 반도체의 미세공정 기술 등을 만회하기 위한 연구개발에 50억달러의 예산이 추가 배정될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조양준·김우보기자 mryesandno@sedaily.com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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