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확장적 재정·통화정책이 경기를 떠받치는 핵심 역할을 했지만 위기에 돈을 다 쏟아부으면 다음 위기 때 쓸 도구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장의 위기 극복도 중요하지만 적절히 관리하지 않을 경우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12일(현지시간) 온라인으로 개막한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고문은 “코로나19를 맞아 세계 각국은 정부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경제 지원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포커게임에서 올인할 때 다음 판은 없다.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여러 번의 정책 대응을 말하는 게 아니며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라고 경고했다. 일부 국가의 경우 다음 위기 때 정책 대응을 위한 총알이 바닥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파산보호신청 업체 헤르츠 주가가 급등하는 것을 보면 모두가 리스크를 너무 크게 지고 있다”며 “중앙은행 우산 밖에 비가 오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326조원을 운용하는 구겐하임파트너스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스콧 마이너드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기업 가운데 최소한 20%는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 항공과 접객·소매업이 대표적”이라며 “이런 회사에 유동성을 제공해 존속시키는 것은 본질적으로 더 심각한 디플레이션 압력을 초래할 것이고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의 전반적인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 벨로즈 웨스턴에셋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공공부채가 개인부채보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경향이 있지만 더 많은 부채는 성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칼라일의 이규성 대표는 “유동성과 기업의 지불능력을 동일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소비자들의 행동양식이 바뀌었으며 이는 기업의 사업모델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유동성이 이러한 문제를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결국 이 문제는 다시 대두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는 “모든 통화는 평가절하되거나 파괴됐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라며 “부채 문제에 금리를 내리게 되고 자산가격이 상승하고 금리가 제로까지 내려가면 더 이상 부양할 능력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유동성이 불러올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당분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비전펀드를 담당하고 있는 소프트뱅크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스의 라지브 미스라 CEO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인플레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고 훨씬 더 싸게 상품을 생산해 인플레에 영향을 줬다. 디지털 경제로 진입하면서 상품과 서비스가 훨씬 더 저렴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이는 인플레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뱅크오브뉴욕(BNY)멜런웰스매니지먼트 CEO인 캐서린 키팅도 “코로나19 이전에 구조적으로 우리는 인구통계학 때문에 인플레를 걱정하지 않았다”며 “미국과 일본·중국·유럽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고령화이며 우리는 경제가 늙게 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하락하고 인플레가 감소하고 수익률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넘쳐나는 돈이 자산가격을 계속 밀어 올릴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중앙은행의 양적완화(QE)에 위험자산의 리스크도 ‘0’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게 금융 빅샷들의 분석이다. 마이너드 CIO는 “주식가격은 현재 우리가 있는 곳보다 훨씬 높은 위치로 가게 될 것”이라고 점쳤다.
3주가량 남은 미 대선은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면서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진단도 나왔다. 키팅 CEO는 “단기적으로는 경기부양이 의미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산업규제와 세율,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자 포럼인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는 매년 4,000여명의 금융과 산업·정치 거물들이 참석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온라인 행사로 치러진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