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잘 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런 연기까지 잘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단 한마디 제대로 된 대사 없이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힘에 뒷덜미를 잡힌 듯 끌려간다.
강한 이야기에 복잡한 메시지, 유괴 범죄를 다루지만 편안해 보이는…‘소리도 없이’는 근래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작품이다. 몸무게를 15㎏이나 불려 나타난 유아인은 위압적인 얼굴을 한 채 이중적 성격을 그려낸다.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없는…. 그 여운 때문일까, 1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아인은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어도 순간 싸늘해질 것만 같아 내심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Q. 시사회 이후 평이 아주 좋다.
-많은 분들이 작품을 반겨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이제 관객 분들을 만나야 할 시간이 왔으니 좋은 평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러닝타임은 짧지만, 이 영화가 관객의 삶에 가져가는 시간은 아주 클 거라고 생각해요.
Q. 아주 독특한 작품인데, 선택 배경은?
-나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은 시기에 만난 작품이에요. 배우로서 다른 체험을 가져가고 싶다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다른 무게나 책임을 가져가고 싶다’는 고민이 있던 상태에서 만났거든요. 결과를 단정짓기는 이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고, 다른 희망이나 가능성을 찾았어요.
Q.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제목이 아주 도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신인 감독이 제목부터 도발적이라고. 빛 어둠 소리 등이 영화의 본질인데 그걸 표면적으로 내세운 시나리오를 만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의 가치가 강하게 느껴졌어요.
Q. 주인공 태인과 창복은 성실하게 일하는 시체처리업자다.
-아주 자극적인 것을 일상적으로 그려도 될까, 위험한 일을 일상처럼 그리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과 힘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했고, 실제로 연기할 때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어요. 일 자체가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위험하지만 어느정도 양심에 따라 일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Q. 캐릭터가 참 특이하다. 인물 전사를 설정한 부분이 있나.
-상상은 했지만 설정은 안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인물 전사가 필요하지만, 이 작품은 모호함을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 있기에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은 부분을 정해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Q. 체중을 15㎏이나 불렸다. 이유는?
-자연스럽게 그 인물이 드러나길 바라는 마음, 겉모습으로는 위압감을 주지만 이를 대신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그려내는데 용이하다고 생각했어요. 텍스트나 톤으로 봤을 때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의외의 선택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제가 많이 소비된 배우이기 때문에 의외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Q. 말을 안한다는 설정도 특이하다.
-말을 못하는게 아니라 안한다는건 표현의 무의미함을 아주 깊이 느꼈다는 거죠. 어느정도 깊이의 상처나 무의미함을 느껴야 말을 안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걸 병적으로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안 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표현을 멈춰버린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며 접근했어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있지 않아요? 충격과 상처로 그게 계속된다면….
Q. 태인은 사망한 조직폭력배 실장의 수트를 벗겨내 빨아서 입는다. 그의 감정 변화를 유일하게 대변하는 소품이다.
-정장은 비교적 노골적으로 상징성이 드러나는 소품이에요. 그 또래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열등감과 욕망이 반영됐다고 생각해요. 그 수트를 입으면서 초라하고 별것 없는 인생일자라도 한번은 영웅이 되고싶은 의지를 상징하는 거죠. 사회인으로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을 다른 식으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있어요.
Q. 가장 어려운 장면은 무엇이었나.
-후반부, 수트를 입기 전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게 가장 어려웠어요. 감독님도 그 느낌은 설명하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숙제로 내주셨거든요. 별거 아닌 결심인데, 영웅이 되어보겠다는데 영웅은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을 표현하는게 조금 어려웠어요.
Q. 태인이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나.
-무심함. 무심함 속의 유심함. 꼬여있는 속내. 그리고 귀여움.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어요. 본성이 닮았다고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나는 태인이처럼 못 사니까. 너무 많은 표현을 하고 살아야 하니 그걸 다 놔버리고 싶기도 했어요.
Q. 메시지가 딱 떨어지는 작품은 아니다.
-‘명확성의 불명확성’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명확할 필요 없는거죠. 우리가 생각하는 명확성, 판단, 단정을 모두 상쇄하는 힘을 주는 영화에요. 저마다 다른 메시지가 되겠죠.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또 반가울 수도. 명확하지 못한 단정 단언 판단하기 좋아하는 우리들에게 조금 다른 태도를, 그 태도가 만들어낼 수 있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에요.
범죄자 미화 영화가 되면 안되겠지만, 미적으로 프레임이 담길 수밖에 없잖아요. 단정짓기, 판단하기와는 다른 가능성을 찾는 작품이다. 결국 아주 자그마한 희망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 작품의 숙제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인만큼 책임과 윤리의식이 수반돼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소리도 없이’의 태도는 윤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결국 작품이 말하려는건 희망이다.
-희망적이지 않아서 희망적인 느낌이라고 할까요. 영화로써 이런 이야기가 관객에게 전달됐을때 조금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설정하지 않을까. ‘화려한 사기’가 유행하는 시기 득세하는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그럴듯한 위로나 희망,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마법들이 많아요. 빛과 소리의 마법 그 자체로서의 즐거움은 틀림없이 존재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본다면 다른 차원의 이야기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 밑바닥에서부터의 희망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영화 속 인물의 미래가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우리 현실의 미래가 중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