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박스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골판지의 원재료인 ‘골판지 원지(사진)’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골판지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국내 골판지 원지 공급 업체인 대양제지의 안산공장이 화재로 수급 차질이 빚어져서다.
14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대양제지 안산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골판지 원지를 생산하던 초지기 2대가 완전 전소됐다. 이에 따라 국내 골판지 원지의 연간 공급량에서 7% 가량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족분을 월간으로 환산하면 3만 3,000톤으로, 금액으로는 115억원(톤당 35만원)에 이른다.
일부 골판지 원지 업체는 ‘원지가 없어 판매를 당분간 중단한다’는 내용을 거래 골판지 업체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골판지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주문이 폭증하면서 택배 상자 등의 수요가 급증해 물량 확보가 절실한 상황인데 악재를 만나서다. 더구나 지난 7월부터 ‘폐지 수입 신고제’가 시행되면서 골판지 원지를 만드는 데 쓰이는 폐지의 월간 수입량이 4만톤에서 3만톤으로 25% 줄어 수급 여유가 줄어 골판지 가격 인상 압력이 높아져 왔는데 이번 화재로 가격 인상의 트리거(방아쇠)가 작동하게 됐다. 실제 골판지 업체인 태림페이퍼는 오는 16일부터, 아진피앤피는 19일부터 골판지 톤당 가격을 20%가량 전격 인상키로 했다. 골판지 원지의 품귀 현상이 곧바로 골판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택배 박스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들의 택배료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택배가 과거보다 수십배 늘면서 택배료 인상에 따른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수출용 박스 제작에도 차질이 빚어져 수출단가 인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지업계는 아세아제지 등 골판지 원지 업체에 수출 물량을 내수로 돌릴 것을 당부하면서 해외 수입선을 타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은 일본, 동남아 등 각국에 원지 비상 수입 가능 여부를 알아보고 있다. 김진무 조합 전무는 “급하게 일본서 연말에 500톤 정도를 수입하기로 했는데 부족 물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지난 2016년에도 신대양제지 화재로 6개월 만에 60%나 골판지 원지 가격이 올라 홍역을 겪었는데 당시보다 피해가 3배나 더 커 수급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업체들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골판지 원지 사재기에 나서면서 가격 폭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