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예형

1515A35 만파



어느 날 예형(禮衡·173~198년)이라는 선비가 조조를 찾아와 “조정에 밥이나 축내는 하찮은 인물들이 가득 찼다”고 비아냥거렸다. 순욱은 상가 문상이나 다니고 곽가는 글귀나 읊조리는데 적임이라는 식의 조롱이었다. 조조는 불쾌한 나머지 그에게 북이나 쳐보라고 시킨 후 누더기를 트집 잡아 무례하다고 꾸짖었다. 예형은 곧바로 옷을 모두 벗어 던진 채 “하늘을 저버리고 천자를 속이는 무례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보이는 무례 중 어느 쪽이 더 과한가 생각해보라”고 되받아쳤다.


예형은 중국 후한 말의 선비로 삼국지에서 가장 대표적인 독설가로 묘사된다. 그는 학식이 풍부하고 재주가 많았지만 기질이 강하고 오만했다고 후한서는 전하고 있다. 평소 독설이 심해 주변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다만 북해 태수 공융과는 돈독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공자와 그의 수제자인 안회에 비유할 정도로 후원자 겸 벗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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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형은 25세에 요절했는데 결국 그의 독설이 화근이 됐다. 조조는 예형에게 망신을 당한 신하들로부터 그를 죽여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세상인심을 잃을까 방법을 고민하다가 사자 역할을 맡겨 형주자사 유표에게 보냈다. 예형의 독설에 진저리를 냈던 유표는 이런 조조의 속셈을 간파하고 자신의 심복인 강하태수 황조에게 떠넘겼다. 황조는 손님들 앞에서 자신의 불손함을 꾸짖자 홧김에 칼을 빼내 예형을 죽이고 말았다. 조조는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어리석은 선비가 제 혓바닥으로 제 몸을 찔러 죽은 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13일 ‘진중권씨는 삼국지 예형의 길을 가고자 하십니까’라는 공식 논평을 통해 “진중권씨의 조롱이 도를 넘어 이제는 광기에 이른 듯하다”고 비난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자주 범여권 인사들을 비판하자 당 차원에서 반박에 나선 것이다. 진 전 교수는 “계속 그러면 목줄을 끊어놓겠다는 협박이냐”며 반박했다. 여당이 독설로 죽임을 당한 예형을 느닷없이 한국 정치판에 소환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더 큰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존중돼야 할 민주주의국가에서 반대 의견에 재갈을 물리려는 발상 자체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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