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방문 등 글로벌 경영 행보를 마치고 14일 귀국했다. 이 부회장은 ASML 경영진과 만나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장비 공급 확대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올해 글로벌 현장 경영은 지난 1월 브라질, 5월 중국에 이어 세번째다.
14일 오전10시께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귀국한 이재용 부회장은 취재진과 마주하고 “(ASML과 만나) 극자외선(EUV) 장비 추가 공급 확대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왔다”고 했다. 긍정적으로 진행된 것이 맞냐는 질문에는 동행한 김기남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사업부문장(부회장)을 가리키며 “우리 김 부회장께 여쭤봐주시라”고 답했다. 올 5월 중국 시안 출장 귀국길에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응한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ASML로부터 공급 확대에 대한 긍정적 시그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회장이 물량 확보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TSMC에 대해 견제구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TSMC와의 격차 해소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 마르틴 판 덴 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 등과 만났다.
이 부회장과 베닝크 CEO는 △7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 장비 공급계획 및 운영 기술 고도화 방안 △AI 등 미래 반도체를 위한 차세대 제조기술 개발협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시장 전망 및 포스트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미래 반도체 기술 전략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이날 ASML의 반도체 제조장비 생산공장도 방문해 EUV 장비 생산 현황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1월에도 삼성전자를 방문한 베닝크 CEO 등 ASML 경영진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미세 공정 기술에 관한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으며 2019년 2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해당 미팅에는 김 부회장도 동석했다.
이 부회장이 유럽 출장에 직접 나선 것은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 2030’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ASML의 EUV 장비 확보가 필수기 때문이다.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ArF) 광원보다 파장이 14분의1로 짧아 10나노 이하 반도체 생산을 위한 핵심 기술로 평가된다. ASML은 전 세계에서 EUV 장비를 공급하는 유일한 업체다. 대당 가격만 1,500억~2000억원에 달하지만 그 수량이 연 70대가량으로 한정돼 삼성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와 해당 장비 공급을 놓고 매년 경쟁을 벌이고 있다.
TSMC가 9월 올해 말까지 EUV 노광기 50대를 확보하겠다고 밝히면서 격차를 좁혀야 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해졌다. 삼성전자가 내년 ASML에서 공급받을 EUV 노광기 예약 대수는 10대 안팎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ASML과의 전략적 우호 관계도 이어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ASML 지분 1.5%를 보유한 주요주주다.
●차기행보는 일본·베트남 거론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외에 스위스에 다녀온 사실도 밝혔다. 여기서 인수 대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스위스 반도체솔루션 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다음 출장지에 대한 질문에 “이번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도 다녀왔다”며 “다음 출장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IOC는 스위스 로잔에 위치해 있다. 삼성은 2028년까지 올림픽 공식 후원사를 맡고 있다.
이 부회장의 다음 출장지 후보로는 일본과 베트남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반도체 핵심 소재와 5세대(5G) 관련 기업을 둘러볼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 현지 언론은 이 부회장이 이달 중 하노이와 호찌민에 위치한 삼성전자 사업장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