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로터리]‘규제 기생 산업’ 혹시 들어보셨나요?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규제 기생 산업’ 혹시 들어보셨나요?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우태희




필자가 모 대학의 특임교수로 있을 때 경험한 일이다. 벤처기업의 신사업 프로젝트를 자문하면서 각종 법령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소관 부처가 여럿이라 관련 분야 공무원 출신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자 수소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규제가 많은 분야의 퇴직 전문가는 기업·단체·로펌 등에서 현역 시절 못지않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어 한가한 분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은 비싼 컨설팅비를 지불한 뒤에야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묘책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사실 규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담당 공무원이다. 그렇다 보니 퇴직 전문가는 민간에는 중요한 영입 대상이다. 규제 리스크를 줄이려는 기업의 니즈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다른 단체도 비슷한 이유로 ‘퇴직 전문가 모시기’에 적극적이다. SOC 건설, 산업단지 조성 등 주요 관급공사 현장에서는 퇴직 전문가가 단순한 행정서류 작성뿐 아니라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 처리, 주민협의·대외홍보 등까지 도맡아 처리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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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분들의 활동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도움을 받을 때도 있지만 컨설팅 비용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담을 없애려면 규제부터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규제 혁신 방안은 두 가지다. 우선 규제의 절대량을 줄여야 한다. 한 가지 규제를 풀어도 더 많은 규제가 신설된다면 소용이 없다. 불필요한 규제 신설을 억제하는 규제총량제와 입법영향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또 중복된 법률은 과감하게 통폐합하고 유사 인허가는 의제 처리하는 등 법령을 최대한 간소화해 기업의 규제 준수 부담을 줄여야 한다.

현직 공무원은 새 규제를 만드는 데 열중하고 퇴직 전문가는 전관예우 관행을 이용해 이를 해결하는 대가로 기업에 손을 내민다면 큰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화 ‘기생충’이 지상과 지하라는 공간의 개념으로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줬다면 공정거래·환경·입지·노동 등 규제가 많은 분야는 현직과 퇴직 간 시간의 연결고리를 통해 ‘규제 기생 산업’이라는 이상한 생태계를 만들고 기업에 이중 부담을 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심각한 요즘 21대 국회에 규제 바이러스가 번지고 있어 더 걱정이다. 규제는 또 다른 규제를 양산하고 법이 길고 복잡해질수록 각종 인허가를 대행하는 직업군 역시 늘어난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규제를 만드는 것도 국회지만 규제총량제·입법영향평가를 도입하고 법령을 간소화하는 것도 국회의 몫이다. 국회가 앞장서서 규제를 줄이는 것이 ‘규제 기생 산업’을 없애고 우리 경제를 활성화하는 지름길이다.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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