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기고] 가사노동자 법적보호 더 미뤄선 안된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1대 국회 가사노동자 보호법 발의

4대보험·휴게시간 보장 등 반길 일

발전적인 개선방안·논의 이뤄져야




오늘날 가사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여성들이 무보수로 했던 가사노동을 일정 대가를 받으며 하지만 ‘비공식노동’으로 취급돼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하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가사노동을 ‘거대한 그림자 노동’ ‘고용의 그늘에 가린 노동’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그림자노동이 산업사회 전체 영역에서 임금노동을 확대하기 위한 필수적 보완물로 발전해왔고 오늘날의 사회는 대가 없는 그림자노동을 발판으로 이룩됐음을 비판했다.

가사노동자 보호 필요성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지난 2011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 100차 총회에서 ‘가사노동자의 양질의 고용에 관한 협약’이 채택되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도 국내외 노동계를 중심으로 가사노동자 보호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특히 위 협약에서는 가사노동자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서 작성, 주 1일 이상 휴일 보장, 노동기본권 보장, 산업재해보상 등이 적용돼야 함을 천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가 시작되기 전인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상 ‘가사사용인’을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단 하나의 법 조항이 현재까지 모든 가사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를 배제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ILO 협약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가사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제 마련 논의가 본격화했으며 19대·20대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의원입법안과 정부입법안이 발의됐지만 입법은 성사되지 못했고 21대 국회에서는 2020년 7월13일 정부입법안인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 다시 국회에 제출됐다. 가사노동자 보호 법제 마련은 너무 늦었을 뿐 아니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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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법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용노동부 장관이 가사근로자를 유급 근로자로 고용하는 등 일정한 요건을 갖춘 법인을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인증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법 위반 시 제공기관에 대한 시정명령과 인증취소가 가능하도록 한다. 둘째,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제공하는 가사서비스의 종류, 요금산정 기준, 이용 절차 등을 일반 이용자들에게 공개한다. 셋째,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자와 서비스 종류, 제공일, 제공시간, 가사근로자의 휴게 시간, 가사서비스 이용요금 등이 포함된 이용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하고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가사서비스를 제공할 가사근로자에게 미리 이용계약 내용을 고지해 가사근로자가 이용계약에 따라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다. 넷째, 가사서비스 제공기관 사업주와 가사근로자 간에는 근로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하도록 하고 가사근로자에게 4대 보험을 적용한다. 다섯째, 가사근로자의 자발적 의사나 경영상 불가피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 주 15시간 이상 근로를 보장한다. 여섯째, 근로기준법상 휴게 시간 적용에 예외를 인정하되 이용계약 등을 통해 보호한다. 다만, 이용자 가구에 입주해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주 가사근로자의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상 휴게 시간을 적용한다. 일곱째, 실제 근로시간에 비례해 유급휴가와 유급휴일을 보장한다.

동 법률안은 가사서비스 시장의 공식화를 시작한다는 점, 가사노동자들의 생계 안정을 위해 최소한 주 15시간 근로 보장을 명문화했다는 점 등에서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가사사용인이 제외되는 한계가 있다. 법 제정 과정에서 가사노동자의 노동보호와 권리보장을 위한 보다 발전적인 개선방안이 논의·반영될 수 있기를 바란다.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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