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아프리카 같은 개발도상국들에 중국 기업들의 통신장비를 쓰지 않으면 대출 지원을 해주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전방위로 화웨이 고사 작전에 나선 셈이다.
1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제개발처(USAID)의 보니 글릭 차장은 중국이 아닌 민주국가 기업들에서 만든 하드웨어를 구매하는 나라들에 총 수십억달러 규모의 대출과 자금조달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USAID의 주 타깃은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와 ZTE다. 글릭 차장은 개도국들에 직원을 파견해 현지 정치인들과 규제당국 관료들에게 “화웨이와 ZTE 통신장비를 쓰는 것은 나쁜 생각이라는 점을 알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중국 통신장비가 해킹에 취약하고 중국 국영은행의 돈을 가져다 쓰는 것은 결국 빚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강조할 방침이다.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정책에 현혹될 경우 천연자원이나 인프라 등 핵심 자원을 내주고도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는 얘기다. 글릭 차장은 “(중국과의 계약에는) 눈에 잘 안 띄는 작은 활자로 적힌 불리한 항목이 많다”며 “(중국의 대출을 받은) 그 나라들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빚이 남겨지고 중국은 그 나라의 국유재산을 차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빚을 갚지 못한 남아시아의 국가가 중국 국영회사에 항구를 팔아야 했던 사례를 그 근거로 내세우겠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화웨이와 ZTE를 쓰지 말라고 하는 대신 우리나라와 유럽 업체의 통신장비를 추천할 예정이다. 미국은 아직 5세대(5G) 기기에 탑재하는 무선통신장비를 만드는 업체가 없다. 이를 고려하면 핀란드 노키아와 스웨덴의 에릭슨, 우리나라 삼성전자 등 5G 무선통신장비를 만드는 기업들이 이번 미국 정부 정책에 수혜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WSJ 역시 미국 정부가 이들 기업과의 거래에 대출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글릭 차장은 이날 핀란드로 출국했다. 그는 개도국들을 위한 통신 협력 합의 체결을 위해 핀란드 정부 관리들, 노키아 관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주요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국가 안보와 보안 등의 이유로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이번 조치가 아프리카 같은 개도국으로 확대되면 추가로 중국과 화웨이를 압박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 업체 델오로그룹에 따르면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화웨이와 ZTE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50~60%에 달한다. WSJ는 “개도국들의 중국 통신장비 구입을 막으려는 금융 지원은 미중갈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미국의 새로운 무기”라고 설명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