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기준 대기업의 일반 지주사가 가진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25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지난 7월 ‘일반지주회사의 CVC(기업형 벤처캐피털) 제한적 보유’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CVC를 일반 지주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 형태로 설립할 수 있게 하는 등 요건을 완화했다. 보통 대기업이 대주주인 CVC는 재무이익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모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되는 벤처기업을 선택해 신사업 동력을 확보한다. 일반 지주사의 CVC 설립을 허용하면 자금 중 일부가 벤처 투자 시장으로 유입돼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대기업과 벤처 간 협업 생태계가 활성화될 것이다.
글로벌 CVC 투자 규모도 매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14년 179억달러(한화 약 20조원)던 세계 CVC 투자 규모는 지난해 총 571억달러(약 67조원)로 증가하며 5년 새 시장 규모가 세 배 이상 확대됐다. CVC가 가장 활성화된 곳은 단연 미국으로 미국 전체 VC 투자 금액의 절반가량이 CVC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의 구글 벤처스, 세일즈포스 닷컴의 세일즈포스 벤처스, 인텔의 인텔 캐피탈 등이 투자액 기준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 CVC 시장은 금산분리 규정 때문에 일반 지주회사들이 우회적인 방법으로 CVC를 운영해왔다. 그 가운데 GS홈쇼핑은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CVC를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2011년부터 스포카·스타일쉐어 등 20여 개 기업에 누적 투자금액 기준 3,500억원을 투자해 오고 있다. 신세계그룹도 올해 7월 CVC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신세계 인터내셔날·센트럴시티·신세계백화점이 공동 출자하는 형식으로 총 자본금 200억원을 투자해 패션 쇼핑앱 ‘에이블리’를 1호 투자기업으로 선정했다.
대기업이 CVC를 운영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인수합병(M&A) 후보군 확보와 신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와 협력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또 실력 있는 벤처기업을 곁에 두고 지켜보다 사업에 필요하다는 확신이 생기면 지분 투자를 하거나 인수를 한다. 벤처투자를 통해 기술 확보와 시장 진입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주사의 벤처 발굴 움직임은 해외까지 확대되는 추세로 딜로이트를 포함 글로벌 자문사를 통한 현지 기업의 정보 제공 및 업무를 지원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
현재 시장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고,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한 비유기적 성장(외부적 요인을 통한 성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인수합병을 통해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기존 사업의 강화 및 보완도 가능하다. CVC 활성화를 통해 국내에서도 더욱 역동적인 대기업과 벤처 간의 협업 생태계가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