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부동산정책은 부작용 넘어 작동불능 상태…바꾸는 것 외에 답 없어”[청론직설]

<윤영선 전 관세청장>

공급·교육 등 정책조합 실패…시장 신뢰 잃고 양극화 심화

양도세 한시면제로 다주택자 퇴로 열고 특목고 폐지 유보해야

모든 부처 재정건전성 불감증 빠져 '기승전 돈 풀기'만 몰두

재정지출때 구체적 대안 제시·지출 추이 공개 의무화 필요

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21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 전 청장은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부작용을 넘어 작동불능 상태”라며 “한시적인 양도세 감면 등으로 다주택자의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21일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 전 청장은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부작용을 넘어 작동불능 상태”라며 “한시적인 양도세 감면 등으로 다주택자의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






부동산시장이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세제 등을 동원한 수요억제책에만 매달리면서 매매가와 전셋값이 모두 급등했다. 지난 7월 말 시행된 새 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전세 대란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재정 상황도 여의치 않다. 지출 확대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정부가 이달 초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을 발표했다. 하지만 시행 시기가 현 정부 임기 이후인 오는 2025년인데다 예외규정이 많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도 지내고 현재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맡고 있는 윤영선 전 관세청장을 21일 만나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방안과 부동산시장 해법 등을 들어봤다. 윤 전 청장은 “지금 부동산정책은 부작용을 넘어 부작동(작동불능) 상태”라며 “한시적인 양도세 감면 등으로 다주택자의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모든 부처가 ‘기승전 돈 풀기’ 에만 몰두하고 재정 건전성에 대해서는 불감증에 빠져 있다”면서 “재정지출에 따른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동산정책 부작용이 만만찮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내적·외적 요인을 모두 고려하지 않았다. 내적으로는 초과수요 억제와 주택공급정책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실패했다. 외적으로는 교육·금융정책, 양 떼 효과(집단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집단행동을 따라 하는 현상)와 같은 심리적 요인도 고려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총수요 관리 등 거시 측면, 주택공급·세제·금융·교육 등 미시 측면을 함께 생각하는 정책조합(폴리시믹스)에 실패했다.

-정부는 시간이 지나면 부동산시장이 안정을 찾아갈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20여차례 부동산대책을 내놓은 결과는 참담하다. 초기에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혼란이 계속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지금 부동산정책은 시장의 신뢰를 상실했다. 부작용을 넘어 작동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책 수정 외에는 답이 없다. 부동산정책 실패의 대가는 크다. 제일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집 없는 30~40대 중산층이다.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했다. 유주택자와 무주택자의 실질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면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의 불안 요소로 떠오를 수 있다.

-부동산시장 연착륙 방안은 무엇인가.

△주택에 대한 시각 변화가 요구된다. 주택시장에는 세 종류의 상품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기존에 있던 보통재, 고급재(9억원 이상 고가주택)에다 새로운 개념의 사치재(서울 강남의 고가주택)가 더해졌다. 정책의 초점을 보통재·고급재에 맞출 필요가 있다. 사치재인 강남 주택은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 자꾸 정책이 사치재를 겨냥하다 보니 부작용만 커지는 것이다. 서울의 주택공급정책으로는 50년 이상 유지된 그린벨트 해제 외에는 대안이 없다. 이를 위해 정부가 환경단체 등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교육정책 보완도 필요하다.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특수목적고 폐지를 유보해야 한다.

-다주택자들의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농어촌 주택 보유자도 다주택자 중과 대상에 포함하는 등 조세 제도가 방향성을 상실했다. 보유세는 강화하되 거래세를 완화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거래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서는 다주택자에게 한시적으로 양도세를 감면해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임대주택의 긍정적 측면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임대주택은 노후세대를 위한 연금 재원 마련과 민간 부문의 주택공급 원활화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이를 살려야 한다.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임대주택정책을 변경하는 게 우선이다. 현재 수도권 자가 보유율은 약 50%인데 서울은 43% 수준이다. 전국 평균을 보더라도 약 60%에 불과하다. 꾸준한 임대주택 공급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임대주택은 공공임대와 민간임대가 조화롭게 공급돼야 하는데 민간임대주택 등록 제도를 폐지한 것은 잘못됐다. 법인 소유 임대주택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 6% 부과는 새로운 부작용을 낳게 되므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는 현재 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도 함께하는 우리 모두의 공동체이다. 개인이나 기업의 수명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영구적 존재이다. 따라서 국가를 건강하게 유지해야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건강한 국가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는 재정 건전성으로 무형의 사회적 자본이다. 하지만 한국의 재정 여건을 보면 건강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부채 구조다. 지난해 기준 가계·기업·정부 부채를 합하면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빚 의존도가 높은 국가인 셈이다.

-재정과 관련해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증가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38%가량이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24년에는 58%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의 재정통계를 토대로 낙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 같다. 부채 증가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과소추정한 측면이 있다. 국가부채 외에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4대 공적연금과 공기업의 방만경영 등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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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코로나19 대책으로 재정 역할이 강조되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정지출도 나라별로 적정 수준이 있으므로 그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최근 30년 동안 10년 주기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등이다. 코로나19 대응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인구 및 기후재앙, 잠재 경제성장률 하락 등으로 미래 재정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정부가 한국형 재정준칙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 특히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정치인의 선심성 정책에 흔들리지 말고 중심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정부의 모든 부처가 정책 집행 과정에서 ‘기승전 돈 풀기’만 생각하고 있다. 모든 부처가 재정 건전성 문제에서 불감증에 빠져 있다. 도덕적 해이가 진짜 위기다. 나라 예산을 주인이 없는 공공재로 여기는 ‘공유지의 비극’ 형태로 가고 있다. 적정한 국가부채 수준에 대한 논쟁은 지금 별 의미가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령화 속도 등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재정지출이 커지면 이에 따른 구체적 대안을 함께 제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강력한 예방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재정준칙이 고무줄 잣대가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가.

△급속한 고령화와 저성장 고착화 등으로 국가채무는 증가하게 돼 있다. 문제는 정치인들의 사욕과 나라의 미래 이익이 충돌하는 것이다.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면 미래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통계 숫자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국책연구기관·학계 및 시민단체 등이 재정준칙에 대해 엄중한 관심을 갖고 국민에 의한 감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하면 중장기 재정지출 및 세입 규모를 매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게 가능하다. 총괄적으로 공개할 경우 체감도가 떨어진다. 65세 이상 고령자 지하철 무임승차 규모, 고령자 기본연금 및 의료비 지출 등처럼 세부항목별로 중장기 재정지출 추이를 세세하게 국민에게 공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기업규제 3법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데.

△과거에 기업들이 잘못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대다수 국가의 경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정관유착·부패 등 천민자본주의를 거쳐서 발전해왔다. 역사의 정반합 작용에 의해 개선되는 과정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로부터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를 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성공하는 국가는 민간의 창의성과 시장의 역할을 확대해간다. 반면 실패하는 국가는 행정규제를 과도하게 신설한다. 기업규제법 추진은 정부가 기업의 양손에 수갑을 채우는 격이다. 2019년 기준 한국의 GDP 규모는 세계 12위지만 세계 전체 GDP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8%에 불과하다. 국제사회에서 보면 소규모 국가다. 이 비중을 높이려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뛰어야 하는데 규제에 묶이면 힘들다.

-정부가 법인세·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핀셋 증세를 계속하고 있다.

△정부의 핀셋 증세는 정치적 증세 성격이 강하다. 경제를 살리려 감세하는 글로벌 추세와 동떨어지고 경제적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크다. 세수 증대 효과보다 국내외 투자자에게 미치는 반(反)기업 시그널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훨씬 클 수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조세정책을 펴면 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 이렇게 되면 경제는 더 가라앉으면서 조세수입과 민간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He is...

1956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들어선 후 재정경제부 소비세제과장, 부동산실무기획단 국장,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관세청장을 지낸 뒤 삼정KPMG그룹 부회장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맡고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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