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30여년전 '250억 빅딜'의 이면

■문 앞의 야만인들

브라이언 버로·존 헬리어 지음, 부키 펴냄




사모펀드(PEF) KKR이 지난 1988년 미국의 식품·담배회사 RJR나비스코를 인수하기 위해 무려 250억달러를 지불한 일은 인수합병(M&A) 역사의 전설이 됐다. 당시 돈의 가치를 고려하면 천문학적 액수로, 2007년까지 이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RJR나비스코 인수 후 담배 부문을 분사해 팔려 한 KKR의 계획은 무산됐고, KKR은 보잘것없는 수익률에 회사 지분을 넘겼다. 그 사이 구조조정이 이어져 담배 부문서만 1년 6개월~2년마다 1,600명씩 정리해고됐다.


‘문 앞의 야만인들’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 출신 저자들이 100여 건의 인터뷰를 통해 이 M&A의 전모를 파헤치고 그 의미를 추적한 책이다. 거래가 논의되던 1988년 10·11월 사이의 M&A 전개 과정을 극적으로 재현한 책은 1990년 첫 출간 당시 심층 탐사보도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국에는 2009년 처음 나온 후 교정·교열 등을 거쳐 개정판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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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야만인’은 주주가치를 명분으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회사를 사들여 수익을 얻는 사냥꾼들을 말한다. 로스 존슨 당시 RJR나비스코 최고경영자(CEO)는 주가의 실적 대비 저평가 국면이 이어지자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더 높은 값에 매각해야 한다고 제안해 성사시키게 된다. 인수전에 참여한 투자사들은 자금을 직접 마련할 방법이 없으니 각종 정크본드까지 끌어들인 차입매수거래(LBO) 방식을 동원했다. 이 거래의 성공은 M&A를 빠르게 한탕 치고 빠지려는 기업사냥꾼들이 판치는 곳으로 만들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 모두가 ‘카지노 사회’로까지 불리던 1980년대 호황기의 산물이란 게 저자의 분석이다. 황당한 계획이라도 컴퓨터를 이용한 복잡한 계산결과로 그럴듯하게 포장해 경영진을 설득하는데 성공하면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두운 역사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저자들은 월가가 배운 게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이들은 “RJR나비스코와 비슷한 거품들은 숱하게 널려 있으며, 지금도 여전히 야만인들은 문 밖에서 다시 한 번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일갈한다. 그 결과는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이은 글로벌 금융위기다. 4만4,000원.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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