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이건희 별세] '이건희의 삼성' 두려워한 글로벌 기업들

“천재적인 경영자 이건희, 일본기업 몰아내”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전세계가 찬사

美워싱턴포스트 등 해외 유수 언론 앞다퉈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 이 회장 경영 조명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200여명의 임직원들에게 품질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신경영 선언’이라고 잘 알려진 당시 회의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어록이 나왔다./사진제공=삼성전자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200여명의 임직원들에게 품질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신경영 선언’이라고 잘 알려진 당시 회의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유명한 어록이 나왔다./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이라는 기업은 무시무시한 기업이다. 마치 에일리언과 같다. 영화 속 에일리언이라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인간의 과학으로는 퇴치가 불가능한 괴물이다. 삼성은 현시점에서는 일본 기업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인 세력을 가진 기업이 되었다.”

지난 2005년 한 권의 책이 일본 경제계에 조용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디베이트연구협회란 한 연구단체에서 펴낸 ‘삼성이 두렵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삼성의 경영 비법에 대해 다루면서 내용 중 상당 부분을 이건희 회장에 대해 집중적으로 할애했다.


이 책의 대표 저자인 기타오카 도시아키 씨는 이 회장을 두고 “천재적인 경영자 이건희가 있었기에 삼성이 일본 기업들을 모조리 밀어낼 수 있었다”며 “일본 사람 중에 그와 비견할 만한 인물은 경영의 신으로까지 추앙 받았던 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 전기산업 사장과 이부카 마사루(소니 명예회장), 혼다 소이치로(혼다 사장)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이 일본 기업을 꺾고 그 위에 올라선 삼성과 삼성호(號)를 이끄는 이 회장에 대해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일갈한 것이다.

일본 뿐만이 아니다. 지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신경영 선언을 시작으로 이 회장은 삼성의 고비마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혁신에 나서며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세웠다. 이런 이 회장의 경영 능력에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가 찬사를 보냈다.

이 회장이 임원급 299명에 대해 사상 최대 규모의 인사를 단행하며 신경영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건 1993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그의 질(質) 경영을 자세히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삼성 제품의 질적인 문제점을 외부인이 아닌 이 회장 본인이 제시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특이한 점”이라며 “이런 개혁 캠페인은 삼성 뿐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시기에 서울에 나와있던 미쓰비시·마루베니·스미토모·이토추 등 일본 9대 종합상사 지점들은 가장 경영을 잘하는 기업인으로 일제히 이 회장을 지목했고, 삼성의 영원한 라이벌인 LG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일사일품’ 운동을 전개하며 상품의 질 개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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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의 신경영은 이후로도 끊임 없이 회자되며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신경영 선언이 있은 지 10년이 지난 2003년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 회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지휘권을 물려 받은 뒤로 대담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활기찬 생명력과 책임감, 디자인, 품질관리가 이 회장의 개혁 덕택에 나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개혁 때문에 삼성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긴 한국의 유일한 재벌이 됐다. 한국 기업들의 모범이 됐고 실제로 모범이 됐다”고 썼다.

또한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3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특집 기사를 통해 휴대전화 수천 대를 화형에 처한 일화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 회장의 20년 전 발언을 소개하며 이 회장이 삼성의 성공신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언론 뿐만이 아니다. 전세계 정관계 요직에 있는 인물들도 이 회장의 혁신적 경영 기법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우에 사토시 산요전기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종업원을 소중히 여기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삼성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영의 스피드와 인사의 공정성’이 있었고 산요 역시 이를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회장이 지장(智將)·덕장(德將)·용장(勇將) 중 어느 쪽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용장 밑에는 약졸 없고, 덕장 밑에는 배신자가 없으며, 지장 밑에는 잔꾀 부리는 사람이 없다”고 설명해 이 회장이 3가지 강점을 두루 갖췄다고 말했다.

다만 이 회장은 본격적으로 경영을 진두지휘한 1990년대 이후 1년에 몇 달씩 출장을 다니며 잭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을 비롯해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 등 산업계의 거물은 물론 모교인 와세다대학의 교수와 세계적 석학들을 두루 만나 그들의 말을 경청했지만 이른바 인맥이라고 할 만한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했던 그의 약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화를 기반으로 오랜 시간 심사숙고를 거쳐 최종 의사 판단을 내리는 신중한 성격 탓이라는 게 삼성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삼성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에 진출할 때 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관련 분야의 학자들을 한 명씩 불러 오랜 시간 이야기를 들으며 지식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마는 게 이 회장의 성품”이라고 설명했다.


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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