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3년 4월부터 상업가동을 시작한 월성 1호기는 국내 최초의 가압중수로형 원자력 발전소다. 농축한 핵연료를 사용하는 경수로와 달리 중수로는 천연 우라늄을 그대로 사용해 간편하지만 일반 경수로에 비해 고준위 핵폐기물을 많이 배출한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는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모델이다. 2012년 수명을 다했으나 한국수력원자력이 개보수를 거쳐 오는 2022년까지 운행기간을 연장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이미 수명연장을 둘러싸고 거센 논란을 겪었다.
새삼 월성 1호기의 이력을 다시 꺼내 든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평가에서 월성 1호기의 재가동 여부가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최근 월성 1호기 가동중단의 ‘경제성 평가가 불합리했다’면서도 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종합적 평가는 내릴 수 없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지적한 경제성 평가의 문제점은 곱씹어봐야 하나 이미 노후한 월성 1호기가 탈원전 정책을 판가름할 잣대가 되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퇴물이 된 월성 1호기가 왜 이렇게까지 현 정부 탈원전 정책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인지 문재인 정부는 복기해봐야 한다.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면 ‘친원전’이고 즉시 중단하면 ‘탈원전’이라는 정치공방은 무의미하다. 탈원전 정책에 따른 상처와 갈등을 적극적으로 수습하지 못한 정부의 게으름이 월성 1호기라는 먹잇감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의 극단적 분열로 이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정부는 2018년 전격적으로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보류했다. 이어 노후 원전 수명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통해 원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한다는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이후 원전 산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었고 원전 생태계 역시 점진적으로 붕괴했다. 한 원전 업체 직원이 정부 공청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공무원들은 책상에 앉아서 고민하지 말라”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정부는 에너지 전환이 ‘국정과제’라면서도 이에 따르는 고통을 어떻게 치유할지 손을 놓고 있었다. 지역경제를 되살리고 원전 생태계를 유지할 정교한 대책이 2년간 전무했다. 월성 1호기와 함께 멈춰선 신한울 3·4호기 건설은 ‘공론화’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와 집권여당,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사회 갈등은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월성 1호기 사태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묵힌 갈등을 방치하면 앞으로 원전이 수명을 다할 때마다 월성 1호기가 부활해 정권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말했듯 에너지 전환은 적어도 60년이 걸리는 일이다. 이해당사자들을 끌어안는 정교한 에너지 정책의 재설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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