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2011년 삼성테크윈의 내부 부정 사실을 보고받고 격노했다. 이 회장이 그룹 내부를 겨냥해 강한 어조로 질책한 것은 처음이었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질책을 느슨해진 그룹의 ‘군기잡기’로 받아들였다. 이후 삼성은 계열사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와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나섰다.
삼성 임원들은 이 회장이 주재한 수요회의에서도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40여년간 삼성에 몸담은 ‘정통 삼성맨’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이 회장은 보고를 받을 때 적어도 다섯번 ‘왜’냐고 물어봤다. 다섯 수 이상을 내다보는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실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는 공부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1인용 소파보다 3인용 소파에 앉아 관계자들을 두루 보며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이 회장은 평상시에는 자상한 경영자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넘치는 카리스마로 그룹을 이끈 승부사였다. 일본 언론들은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반도체와 스마트폰 분야에서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카리스마 경영자’로 평가했다. 이 회장은 1997년에 낸 에세이에서 “나는 이유 있는 실패는 반기지만 터무니없는 실패,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