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회사들이 택배 기사의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작 추가 인건비 부담은 누가 지느냐는 문제가 쟁점으로 남았다. 택배 기사가 법적으로는 회사·대리점주와 대등한 위치에서 계약 관계를 맺은 ‘1인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택배 기사들은 업무 실적에 따라 수익이 천차만별이라 서로 입장이 다르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CJ대한통운 같은 업계 1위 업체에서 일하는 택배 기사는 한진·롯데·로젠 등 2~3위권 업체와 계약 관계인 택배 기사들보다 수익이 높은 편이다. 택배 기사들은 택배회사들이 추가 인건비 부담을 하기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결국 비용 전가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택배 물량은 최근 몇 년 동안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3억1,950만박스에서 2019년 27억9,650만박스로 연평균 10%씩 늘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상반기 물동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0% 증가한 16억770만박스를 기록했다.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택배 기사들이 ‘공짜노동’이라고 부르는 분류작업 시간도 동시에 늘었다. 택배는 허브 터미널을 거쳐 서브 터미널이라고 불리는 집화장으로 보내지는데 이 과정에서 4~6시간가량 분류작업이 필요하다.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가 잇따르자 국내 택배 물량의 50%를 처리하는 CJ대한통운은 분류작업 인력 4,000명을 다음 달부터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진택배도 심야 배송 중단과 함께 분류작업 인력 1,000명을 투입하기로 했다. 롯데 택배 역시 물량 조절제를 도입하고 분류작업 인력 1,000명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추가 인건비 부담의 주체가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택배 회사와 택배 기사의 법적 관계가 사실상 사업자끼리의 계약인 ‘위수탁 관계’이기 때문이다. 택배 배송량과 계약 방법 등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1인 사업자의 성격을 띠는 만큼 사측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CJ대한통운에서 일하는 택배 기사의 경우 올해 상반기 평균 수입이 월 690만원이다. 대리점 수수료, 연료비, 차량 할부비 등을 제외해도 월 524만원이다. 한 택배 기사는 “건물만 없지 우리도 똑같이 영업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적게 일하든 많이 일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반면 2~3위권 업계에서 일하는 택배 기사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편이다. 택배사 2곳에서 일을 해온 한 택배 기사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CJ대한통운으로 가고 일반 택배 기사들은 돈을 많이 못 벌고 일하기 싫어도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CJ대한통운이 예상하는 연간 분류작업 인건비 500억원은 결국 대리점 및 택배 기사가 비용을 분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롯데 택배도 올해 택배 기사에게 돌아가는 지원금을 줄였다. 분류작업 인력 투입이 되레 택배 기사와 대리점주에게 돌아가는 수수료 삭감만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택배 물량은 급증했지만 택배회사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배송 단가가 낮아진 것도 물류비용 분담 가능성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2012년 2,506원이던 평균 택배 단가는 2019년 2,269원까지 떨어졌다. 택배 물량이 2014~2017년 10%가 넘는 성장세를 보일 때 매출액 성장률은 10% 미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은 지난해 2,006원이던 평균 택배 단가가 올해 상반기 1,950원으로 더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