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창녕 가야고분서 비화가야 王史 밝혀낼 금동관 등 출토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발굴 작업

최고지배층 고분서 유물 일체 확인은 처음

경주 황남동 신라 고분 장신구와 유사

비화가야의 성격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교동 Ⅱ군 63호분 내에서 발굴된 장신구 일체./사진제공=문화재청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교동 Ⅱ군 63호분 내에서 발굴된 장신구 일체./사진제공=문화재청



경남 창녕의 가야 고분에서 금동관을 포함해 지배자의 장신구가 무더기로 출토됐다.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 고분에서 장신구가 온전히 출토된 최초의 사례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교동 Ⅱ군 63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해 비화가야 지배자의 꾸밈유물인 장신구 일체를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이번에 확인된 장신구 유물은 높이 21.5㎝의 금동관, 관(冠)에 드리운 금동 드리개와 금동 막대장식, 굵은고리귀걸이 1쌍, 유리구슬 목걸이, 은반지, 은 허리띠 등 지배자 몸에 둘렀던 상태의 꾸밈유물 일체다.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지난 9월 발굴된 경주 황남동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장신구 일체와 비슷한 구성이라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설명했다.



장신구들은 피장자 몸에 부착됐던 상태 그대로 발견됐다. 머리 부분에서는 금동으로 만든 관이, 양쪽 귀부분에서는 금으로 만든 굵은고리귀걸이 1쌍이 확인됐다. 목과 가슴에는 남색 유리구슬을 3~4줄로 엮어서 만든 구슬 목걸이가, 허리에는 은으로 만든 허리띠가 있었다. 또 손 부분에서는 은반지들이 확인됐다.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 고분에서 피장자의 장신구 일체가 온전히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을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사진제공=문화재청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을 하늘에서 바라본 모습./사진제공=문화재청


특히, 피장자 발치 바닥을 40㎝ 정도 낮춘 공간이 확인됐는데, 2명의 순장자가 안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순장 공간에는 순장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아와 다리뼈 일부도 같이 출토됐다. 양숙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금동관 등 출토된 유물을 봤을 때 고분의 주인공은 창녕지역을 지배했던 비야가야의 최고지배계급으로 볼 수 있다”며 “다만, 소가야의 왕사는 문헌과 유적 등에서는 거의 확인이 되지 않고 있어 왕이란 호칭을 쓰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오는 11월5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를 통해 발굴 당시 녹화한 동영상을 공개하고, 국민들과 언론의 궁금증에 실시간 댓글로 답변하는 온라인 발굴조사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양 실장은 “지금까지 비화가야 지역에서는 일제강점기 이후 진행된 약탈과 도굴로 인해 당시 지배계층의 상징물이었던 금동관의 일부 편과 장신구만이 확인되었을 뿐 그 전모를 알 수 없었다”며 “이번 조사로 비화가야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의례를 이해하고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는 비화가야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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