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주도하는 ‘한국판 뉴딜정책’에 발맞춰 국내 증시에 상장한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출범 초기에 저조한 성과를 내고 있다. 변동성이 큰 성장주 중심의 ETF지만 사실상 정부가 투자를 적극 권유해 적지 않은 손실을 보게 된 만큼 ‘관제펀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관련기사 2면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TIGER KRX BBIG K-뉴딜(364960) ETF는 이날 9,775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 7일 상장 시초가(1만365원) 대비 4.1% 내린 수준이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0.2% 하락한 데 비하면 수익률이 크게 뒤처진다. 뉴딜지수를 구성하는 4개 업종별 ETF의 성과도 저조하다. KRX BBIG K-뉴딜 바이오 ETF(-3.02%), 2차전지(-5.2%), 게임(-5.88%), 인터넷(-6.09%) 등 대부분이 코스피지수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들 ETF가 초기부터 저조한 성적을 내는 것은 관련 종목의 주가가 단기 급등한 상황에서 시장보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성급하게 선보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BBIG ETF는 한국거래소가 개발한 5개의 ‘KRX K-뉴딜지수’를 추종하는데 지수에 포함된 대부분의 종목이 지수 발표 이후 크게는 40% 가까이 조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K-뉴딜지수’ 구성 종목들이 대부분 변동성이 큰 성장주라는 점에서 위험이 작지 않은 상품에 정부가 나서 투자를 권유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KRX BBIG K-뉴딜지수에 편입된 종목들이 대부분 지난해보다 주가가 50%는 오른 상태였는데 너무 성장성에 초점을 둬 지수를 개발했다”며 “변동성이 크고 과대계상된 종목을 편입하다 보니 출범 초기에 수익률이 저조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심우일·박성호기자 vita@sedaily.com
성급한 ‘정부 주도’가 毒 됐나...BBIG 지수 종목 85%가 하락 |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BBIG K-뉴딜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40개 종목의 지난 9월7일 지수 발표 후 현재까지 주가 하락률은 평균 12.6%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1.63%, 코스닥지수는 6.91% 빠진 것과 비교하면 이들 종목이 전반적인 국내 증시 하락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하락한 종목은 넷마블로 지수 발표일 주가는 19만3,500원이었지만 현재는 12만6,000원으로 34.88% 하락했다. 서진시스템은 5만4,900원이던 주가가 지금은 3만7,550원으로 31.6% 하락했다. 이 밖에도 알테오젠(-29.26%), 두산솔루스(-27.68%), 네오위즈(-26.85%), 케이엠더블유(-25.75%) 등은 지수 발표일 주가의 4분의1이 허공에 사라졌다. 특히 이들 종목 대부분이 지수 발표일 전후로 올해 최고가를 기록했다. 실제로 넷마블의 경우 지수 발표일 당일 장중 20만4,500원으로 52주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고 서진시스템 역시 당일 5만7,500원까지 올랐다. 주식투자로 따지면 ‘상투’를 잡은 셈이었다. 반면 지수 발표일보다 오른 종목은 NHN한국사이버결제·펄어비스·아프리카TV·골프존·씨젠·위메이드 등 6개에 불과했다. 이들 종목의 상승률은 4.71% 정도였다.
지수를 구성하는 종목들이 죽을 쑤면서 관련 지수와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도 약세를 면하지 못했다. 한국거래소에서 개발한 BBIG와 2차전지 등 5개 K-뉴딜지수의 발표일 대비 현재 변동률은 -10.2~-16.7%를 기록 중이며 관련 ETF도 -3.02~-6.09%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올해 들어 기술주들이 급등하면서 가격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9월 이후 미국 대선 불확실성, 코로나19 재확산, 추가 부양책 지연 등이 부각되며 성장주가 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수석연구위원은 “편입 종목이 시총이 아니라 균등비중으로 조정되면서 시총이 작은 중·소형주가 인덱스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지수”라며 “최근 성장주, 특히 코스닥 중·소형주 성과가 좋지 않자 이들 상품 수익률도 좋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기급등에 따른 부담감과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개별 종목 주가가 빠진 탓이 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변동성이 큰 성장주 중심의 지수와 금융상품을 정부가 주도한 것은 되짚어봐야 할 점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K-뉴딜지수를 만든 것은 한국거래소지만 결국 정부의 ‘한국형 뉴딜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개발된 만큼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와 성격이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과거에도 정부 주도로 금융상품을 조성하려는 시도는 있어 왔고 정책판단에 따라 상품을 출시했다가 결과가 지지부진했던 사례가 있다”며 “아직 문제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BBIG 관련 지수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과거보다 진행 속도를 높이는 등 서둘렀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그린뉴딜이 중요하니 기업을 키우기 위해 투자상품의 기준이 되는 지수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성장성에만 너무 치우쳐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K-뉴딜지수와 관련된 5개 ETF의 순자산 총액은 4,375억원 정도다. 일부는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가들의 자금이지만 개인 자금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대주주 양도세 기준 강화, 미 대선과 추가부양책 지연 등이 여전한 만큼 BBIG 업종이 연말까지는 이전과 같은 상승세를 되찾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분간 투자금이 묶일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다만 내년 이후 중장기적으로는 BBIG 업종의 회복이 예상된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정부에서 추진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관련주가 올해 높은 이익 증가율을 기록했다”며 “내년부터 본격적인 투자가 진행되는 뉴딜정책 관련주도 정부정책에 대한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