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공기업의 주가가 맥을 추지 못하면서 소액주주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시장 경쟁을 전제로 한 상장사이지만 공공성이 유난히 강조되면서 주가가 시장 수익률을 밑돌고 이에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8개 상장 공기업의 연초 대비 평균 주가 하락률은 28.34%로 집계됐다. 국내 증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타격을 회복한 가운데 한국전력(015760)(-30%), 기업은행(024110)(-29%), 한국가스공사(036460)(-27%) 등은 주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부진은 만성화되고 있다. 8개 상장 공기업은 2018년 연초 대비 평균 43.15% 주가가 하락했다.
주가를 지탱하는 실적이 부진한 것이 하락의 배경으로 꼽힌다. 올해 3·4분기 국내 4대 금융지주가 깜짝 실적을 공개한 가운데 기업은행은 지난해와 비교해 5.0% 감소한 4,84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놓았다. 시장의 기대치를 5.8%가량 밑도는 부진한 흐름이다. 소상공인 지원대출의 영향으로 순이자마진(NIM)이 직전 분기 대비 12bp(1bp=0.01%포인트) 가파르게 하락하며 성과를 갉아먹었다. 구경회 SK증권 연구원은 “기업은행은 3·4분기 경쟁사 대비 돋보이지 않는 실적을 내놨다”며 “주가 상승 여력이 크지 않아 ‘중립’ 의견을 유지한다”고 평가했다.
한때 ‘국민주’로 불리던 한국전력은 원재료 가격이 내리며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 덕분에 지난 3·4분기 양호한 실적을 거뒀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린뉴딜 추진에 따른 에너지 비용 부담과 지지부진한 요금인상 논의 등 ‘장기 성장성’에 대한 꺼지지 않는 우려가 주가를 억누르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와 지역난방공사(071320)도 3·4분기에 각각 1,813억원, 244억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올릴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자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한 선제 조건으로 그간 간과된 수익성 제고가 거론된다. 정부가 상장 공기업 지분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다 보니 요금·사업 방향 등이 시장 원리보다 정책에 따라 통제되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됐다. 상장 공기업을 다수 보유한 프랑스·핀란드의 공기업이 최우선 목표로 수익성과 가치 극대화를 내세우고, 매년 주가 정보·변동 원인을 해설한 보고서를 발간하는 것과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허경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원은 “국내 상장 공기업은 ‘상장’에 차별화를 두지 않고 다른 공공기관과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상장 공기업의 경영과 운영의 독립성이 제고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소액주주의 권리보호도 필요하다. 지난해 한국전력 소액주주들이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주주가치가 크게 훼손됐다며 주가 회복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개인을 중심으로 주주 권리가 균형감 있게 보장되지 못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기업은행의 경우처럼 코로나19라는 특수한 환경 속 국책은행으로서 책무를 이행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서민경제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 못지않게 주주가치 보호를 위한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도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은행에 대해 “특수한 경기상황에서 대출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상장사로 실적 충격과 유상증자에 대한 소액주주 보호수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