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지구 끝까지 쫓아가 잡는다…‘보이스피싱 저승사자’의 집념

[이웃집 경찰관]서주완 서울 성동서 강력2팀 경위

자금흐름 추적한 뒤 교도소 찾아가 조직원 설득

자비로 중국출장 가서 보이스피싱 수법 파악도

3년간 모은 적금 뺏긴 20대 등 피해자들에 미안

1년 5개월 추적 끝 검거…“피해자 눈 못 마주쳐”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서주완 강력2팀 경위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성형주기자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서주완 강력2팀 경위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성형주기자



‘보이스피싱’은 흔히 낭떠러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발로 밀어버리는 것과 같은 범죄라고 불린다. 사회 취약계층을 상대로 벌어지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피해자의 전 재산뿐 아니라 대출까지 받게 한 뒤 모든 돈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빼앗긴 돈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다. 주범들은 대부분 중국에 있고, 국내에서 붙잡힌 조직원들은 수거한 돈만 중국으로 보내는 전달책인 경우가 허다하다. 설령 경찰이 전달책을 잡더라도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이들이 대부분이라 나머지 주범들을 추적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추적에 매달려 끝내 범인을 붙잡는 형사들이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하는데 성공한 서울 성동경찰서 강력2팀이 그 주인공이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실체를 밝혀내고 실제 검거하기까지는 무려 1년 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을 소탕하고 싶다는 의지는 있었지만 밀려드는 업무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당시 강력2팀장이던 서주완 경위는 “딱 한 번만 해보자”며 팀원들을 설득해나갔다.

팀장에 설득당한 강력2팀은 전달책이 중국으로 돈을 보낸 계좌와 다시 빠져나간 계좌들을 일일이 추적해나갔다. 계좌 추적하는 데만 무려 5개월이 걸렸다. 서 경위는 당시 팀원 한 명과 함께 자비를 들여 보이스피싱 총책들이 상주하던 중국에 직접 다녀왔다. 자금세탁 담당자를 직접 만나 어떤 식으로 범행이 이뤄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자금 흐름을 계속 추적하고 치밀하게 분석한 결과 중국 현지 콜센터 직원을 특정한 뒤 국내로 입국하는 걸 파악해 검거했다.


하지만 조직 전체의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체포됐을 경우를 대비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교육을 받은 범인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음으로 다가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서 경위는 수차례에 걸쳐 교도소를 찾아가 친근감을 쌓아갔다. 서 경위는 “검거되면 도움을 주기로 했던 조직에서 한 달째 아무런 연락이 없자 교도소에 수감된 피의자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며 “마음이 흔들리는 틈을 이용해 재차 설득에 나섰고, 결국 감추는 것 없이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서주완 강력2팀 경위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성형주기자서울 성동경찰서에서 서주완 강력2팀 경위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성형주기자


처음 검거됐던 조직원의 도움 덕에 수사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조직원들이 검거되면서 107명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보이스피싱 조직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들 일당에 사기 당한 피해자만 322명, 피해금액은 140억원에 달했다. 피해자 1명당 4,300만원을 뺏긴 셈이다.

가짜 검사실까지 만들어가면 사기를 친 보이스피싱 조직에 피해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322명의 피해자 중에는 3년간 어렵게 모은 3,000만원을 모두 뺏긴 것도 모자라 6,0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아 보이스피싱 일당에 넘긴 청년부터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여성, 손자의 대학등록금을 몽땅 날린 할머니까지 구구절절한 사연이 서 경위의 마음을 움직였다. 서 경위는 “돈을 돌려주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때문에 내 손을 부여잡고 울면서 사정하는 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며 “피해자들을 만나다보니 누군가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피해는 매년 꾸준히 늘면서 어느덧 누적 피해금액은 조 단위를 넘어섰다. 직접 보이스피싱 조직을 수사하는 서 경위도 그 피해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 그는 “피해 금액이 1,000만원 단위인 범죄가 매 당직마다 3~4건 정도 발생한다”며 “오래 집중하고 파헤쳐야 검거가 가능하지만 업무가 쏟아지면서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서 경위는 아무리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해도 피해 회복이 쉽지 않은 만큼 국가 차원에서 범죄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 경위는 “갈수록 보이스피싱 범행이 치밀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며 “새로운 수법이 등장하거나 인근에서 피해가 발생하면 재난문자를 보내는 등 전국민에게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일 조직 범행을 여러 경찰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사할 때가 많은데 중심을 잡고 수사 지휘를 내려줄 수 있는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심기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