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이재명 경기도지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앞서 정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이 지사에게 철이 없다고 한 것과 관련해 할 이야기가 있느냐”고 질문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30만원씩 50번, 100번 줘도 재정건전성에 우려가 없다’는 이 지사의 말을 “책임 없는 발언”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었다.
‘사법 리스크’라는 족쇄를 벗어 던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젠 국회 내 세력 다지기에 나섰다. 그간 “인재 풀이 적다” “이재명계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회 내 세력이 크지 않았던 이 지사지만, 이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료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지사가 무죄 판결을 받고 지지율을 꾸준히 올리자 “대선 전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이 지사는 특히 지역화폐, 기본소득 등 ‘이재명표 정책’을 공유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9월29일 경기도청 상황실에서 이동주 민주당 의원과 ‘전국 소상공인단체 대표 간담회’를 열었다. 같은 달 11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민주당 내에서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이 의원과 함께 목요 대화를 열어 소상공인 문제를 논의한 데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는 이 의원과 ‘복합쇼핑몰 불공정 사각지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같이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소상공인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양 측이 밀접하게 교류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사는 지난 9월 ‘조세재정연구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으로 설전을 벌일 때도 이 의원 측의 논거를 인용하기도 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9월 지역화폐가 다양한 손실과 비용을 초래하면서 역효과를 낸다는 보고서를 내자, 이 의원은 “근거 없이 정부 정책을 때리는 얼빠진 국책 연구기관”이라며 몇 가지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여기에 일부 논거들을 경기도가 이 의원 측으로부터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이 지시가 의원들과 접촉을 늘리는 또 다른 통로다. 이 지사는 지난 7월 30일 국회 기본소득 연구포럼 창립 총회에 참석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동료 국회의원들을 격려했다. 포럼의 책임연구위원을 맡은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지사에게 “기본소득을 10년 전부터 선거 공약으로 제시해왔다”고 말하자, 이 지사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그 때부터 했느냐”며 허 의원을 추어올렸다.
이처럼 이 지사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것은 그간 한계로 지적돼왔던 ‘작은 세력’을 극복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현재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현역 의원들은 경기를 지역구로 둔 정성호·김영진·김병욱·이규민·임종성 의원이 대표적이다. 원외 인사로는 이종걸·유승희·제윤경 의원이, 경기도에서는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 김재용 경기도 정책공약수석을 비롯해 은수미 성남시장 등이 ‘이재명의 사람들’로 꼽힌다.
이 지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 확정을 받고 지지율을 끌어올리자, 그를 바라보는 당내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이 지사가 무죄 판결을 받기 전 이 지사의 한 측근은 “이재명계 딱지가 붙는 순간 민주당에서 정치 생명은 끝났다”며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대권 양강 구도를 그리고 있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비교해 이 지사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자 흐름이 바뀌는 모양새다. 이 지사는 최근 대선주자 후보 선호도에서 이 대표를 바짝 따라붙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달 21일부터 25일까지 성인남녀 2,5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 따르면 이 대표는 22.5%, 이 지사는 21.4%로 1.1%포인트 차를 기록했다. 4월 총선 당시 이 대표는 친문의 지지를 등에 업고 40.2%의 선호도를 기록한 반면 이 지사는 14.4%에 불과했지만 불과 반년 만에 차이가 1%포인트대로 좁혀진 것이다(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최근 이 지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한 의원의 보좌관은 “의원님이 이낙연 체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당장 이 대표와 이 지사 중 누구를 선택할 일이 아니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