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드디어 3일 실시된다. 한미동맹에 힘입어 북한의 침략을 억제 및 대응하면서 경제발전에 매진해온 한국의 입장에서 미 대선에 관심이 큰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정부는 물론이고 수많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누가 될 확률이 높고, 그러할 경우 어떤 정책적 변화가 수반될 것인지 전망하는 데 바쁘다. 선거가 끝나도 취임식까지의 2개월 반과 취임식 이후까지 새 행정부의 정책방향 전망과 이에 대한 한국의 적응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대외정책을 미국 대선의 종속변수로 만들 우려가 없지 않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미국의 대외정책은 행정부별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와 좌, 공화와 민주는 대외정책이 아니라 경제와 사회에 관한 시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현재의 미중대결 구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의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이라는 전망처럼 미중 간 패권전쟁은 구조적 필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중 간 대결이 추진된 것으로 보이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이미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또는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to Asia)’이라는 구호로 중국과의 대결을 준비했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와 상관없이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은 지속될 것이고 지난 5월 의회 보고서를 통해 공표한 중국에 대한 ‘경쟁적 접근’도 지속될 것이다. 한국은 미 대선을 핑계로 안보 관련 사안의 결정과 추진을 미룰 것이 아니라 미중대결의 환경 속에서 한국이 어떤 안보전략과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인지를 서둘러 정립하고 구현해나가야 한다.
북핵에 대한 대응방향도 미 대선 결과에 따라 변화될 소지가 별로 없다. 북한은 수소폭탄을 포함한 수십 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이고 10월10일 열병식에서 ‘화성-16형’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북극성-3형’ 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과시했다. 이제 미국은 북한이 미 본토에 대한 핵미사일 공격으로 위협하는 상황을 염려해야 하기 때문에 약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기계적으로 확장억제를 이행해줄 수는 없다. 북핵 문제에 대한 ‘고르디우스의 매듭(복잡하게 얽혀 풀기 어려운 문제)’은 없다. 정부는 날로 심각해지는 북핵 위협과 불안해지는 미 확장억제라는 이중고(二重苦) 속에서 국민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서둘러 고민하고 만전지계 차원의 대응정책을 도출 및 구현해나가야 한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지금까지 한미동맹에 관한 제반 변화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주도해온 측면이 크다. 동맹조약부터 한국이 요구해 체결됐고 한미연합사 창설도 한국이 주도했다. 미국의 닉슨, 카터, 부시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결정도 한국이 적극적으로 노력해 부분적인 감축 후 백지화시켰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해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겠다고 한 것도 한국이고, ‘균형외교’를 통해 중국으로 접근하겠다고 결정한 것도 한국이다. 미국은 대(對)강대국 정책과 전략에는 노력을 집중하지만 그 외의 사안은 동맹국들의 요구를 가급적 수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미국의 대외정책은 행정부별 가변성보다는 불변성이 더욱 크다. 한국은 미국 대선을 핑계로 수개월 동안 미중대결, 북핵 문제, 방위비 분담 등 한미동맹에 관한 제반 사안을 미뤄왔는데 더 이상의 지체는 곤란하다. 현 안보상황이 그처럼 한가롭지 않기 때문이다. ‘쿼드(Quad,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 비공식 안보회의체)’에도 참여하는 등 미중 간 균형외교에서 벗어나 인도태평양 국가 간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와 ‘핵공유(nuclear sharing)’ 등 적극적인 억제책을 검토해 미국에 능동적으로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새 행정부 출범 전에 방위비 분담을 타결할 필요도 없지 않다. 이로써 한미동맹에 대한 적극성을 과시하고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한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도성이야말로 자주의 실질적인 조건이다.